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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화 _ 광주연극협회장․호남대교수
평화연극제는 2005년 우리 광주에서 시작된 전국에서 몇 안 되는 테마형 연극축제이다. 올해는 그 시기를 5월로 옮겼다. 오월로 옮기고 보니 떡하니 5.18이 먼저 들어온다. 5월은 광주에게 약일까? 독일까?
일찍이 <금희의 오월>이라는 작품에 참여하였는데 87년 제1회 민족극 한마당이다. 당시 극단 토박이는 <금희의 오월>로, 극단 신명은 <일어서는 사람들>이라는 제하에 각기 다른 무대양식 속에서 오월 광주를 다루었다. 이후 극단 토박이는 민들레 소극장에서 심리극 <모란꽃>을 2년간 장기 공연한다.
몇 년 전에는 윤정환 씨가 <짬뽕>이라는 다소 경망스런(?) 아니 기발한 발상의 이름으로 공전의 히트작을 탄생시켰으며, 5.18 20주년에는 <봄날>이, 작년 30주년에는 뮤지컬 <화려한 휴가>가 창작되었다. 또 우리 축제와 때를 같이하여 남산예술센터에서는 연극 <푸르른 날에>가 무대에 올랐다.
어쨌든 현대 민주주의 역사의 가장 큰 변곡점 ‘오월’은 예술가들에게는 카르마인 듯 보듬고 소화하기에는 참으로 불편한 소재이다.
하지만 우리의 무모함은 내친김에 5.18을 물어보고 싶었다. ‘당신은 어떻게 넘으려 하요? 가는 길이나 물어봅시다!’ 하고. 또 궁금한 건 그런 예술가들의 생각이 보는 관객에게는 전혀 다른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들고, 어쩌면 먼저 넘어 갔을 것 같다는 생각도 중첩되어 들어온다. 그래서 무대는 객석을 향해 ‘어쩌요?’ 하고 묻고 싶은 마음도 동하리라.
작가와 연출자 배우, 디자이너의 생각과 행동이 관객과의 접점에서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참으로 궁금했다. 실은 관객이 쏟아낼 반응에 겁도 많이 났다. 간혹 예술가는 이러한 관객의 반응을 너무나 무시하기도 하고, 더러는 지나치게 결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참여 예술가에게는 생소한, 그리고 불편한, 그러나 흥미로운 공연 조건이 제시되었다. 주제‘5.18, 무대에⁀서 길을 물었다’와 제한된 시간(25분 내외)에서 디자이너 이인애 씨의 무대를 활용해서 풀이하라는 미션이다.
무대는 그 해방의 날, 도청 분수대를 연상시키는 원형과 망자의 관이 묶인 듯 풀어 헤친 듯 길게 가는 길을 만들었고 만장은 남은 자의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제를 드러내기에 25분은 어쩌면 턱없이 짧은 시간이다. 우리는 그래도 강한 의지로 참여하려는 8명의 연출자를 선정하였다.
첫 날, 먼저 오성완 연출 <망월>이 무대에 오른다. 그해 오월의 달밤에 대한 아픈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어미의 걸음걸음, 한숨 한숨에서 비통함과 애절함이 베어 나온다.
아버지가 잠들어 있는 5.18 묘지를 찾은 딸이 누군가와 우연히 5월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누군가는 아버지의 혼령이다. 아버지의 혼령이 딸과 31년 만에 조우하는 손규홍 연출의 연극 <조우>.
공수부대 출신으로 무고한 시민을 죽인 그, 지금은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그, 나는 그를 치유할 수 있는가? 누가 피해자이며 또 가해자인지 윤회처럼 거듭되는 폭력의 사슬을 끊고자 했던 원광연 연출의 <그와 나>, 수구세력의 인권유린과 정치적 폭거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로운 삶을 역설했던 이정하 연출의 <역사는 흐른다>가 공연되었다.
둘째 날, 인류의 탄생과 탐욕, 권력 갈등과 충돌의 역사가 흰 천과 장미를 활용하여 이미지화된다. 흰 천은 탯줄이거나 나를 옥죄는 올가미가 되기도 하고 장미는 사람들 물욕의 대상이다가, 어린왕자의 친구이자 희망으로 던져지기도 한다. 오브제의 중의적 활용이 돋보였던 이정대 연출의 <아, 광주>, 행동과 방관의 경계에 선 우리들 양심에 대해 오늘날의 소소한 일상을 놓고 비겁하고 천박한 양심을 교차시켜 풍자하는 재미진 변주의 구성이 돋보인 반무섭 연출의 <망각>, 5월 그날의 사수를 정공법으로 그려 내고 언제나 그렇듯 그 장면 그 소리에 눈물짓는 광주의 심정을 그린 양정인 연출의 <회상 5월>.
스페인 시인 로르카의 시 <오후 5시>를 연극적 이미지와 상징으로 표현한 연극 <오후 5시>는 아주 느린 배우들의 움직임을 통해 스쳐 보내지 말아야 할, 그러나 쉽게 지나쳐버릴 우리의 감정과 사고를 모두 들추어낸다. 원영오 연출의 기가 막힌 신체 비언어극까지, 각각 다른 시각 다른 관점에서 다른 스타일을 만들어 냈다.
5월이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예술가들에게 제공하고 이렇게 다른 양식의 옷을 입고 나타난단 말인가? 참으로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특히 관객의 편안한 관극을 리드하는 연극평론가 김길수, 백현미 교수의 친절한 공연 해설은 연출가의 상상표현에 날개를 다는 훌륭한 길라잡이가 되었다.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은 자신들의 감상소회를 여지없이 분출하였다. 아, 이런 수준 높은 문화행위, 적극적인 문화행동이 과거 어디에 있었단 말인가? 감동이 밀려왔다. 아쉬운 점도 많았다. 사전 충분한 시간을 갖고 무대 디자인을 제공하지 못한 점, 주제나 제시된 공연 조건을 놓고 연출자 워크숍을 통해 무대의 활용이나 주제학습, 관점의 논의 등이 선행되었으면 했던 점,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홍보라든가 우리에겐 개선해야 할 점들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문화광주의 해법이 광주의 정체성, 광주의 브랜드, 광주의 독창성에 있다고 볼 때 2011 광주 평화연극제는 새로운 솔루션을 제시해 보고자 하였다. 광주와 평화, 광주와 연극예술, 연극과 평화의 관계가 광주의 문화관계에서 튼튼한 구조로서 기능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해 본다.
아참, 31명으로 구성된 시민평가단은 극단 작은 신화의 <망각>(반무섭 연출)을 올해 광주평화연극상으로 선정하였다. 아마도 오늘의 관객은 오늘의 시점에 그날을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