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흥,꿈

정다운 _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3기 통신원

5월! 푸르른 하늘과 초록이 스며든 나무, 따사로운 햇볕 속에서 반짝이는 꽃들. 가족들과 또 친구들과 룰루랄라 여행을 떠나고 싶은 계절이다. 하지만 나에게 오월은 밤잠을 앗아가는 바쁜 달일 뿐이다. 그래서일까?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시험과 과제를 껴안은 내게 오월의 싱그러움은 그저 치! 질투나는 약올림으로만 다가왔다.

그러던 중 쌓여 있는 이메일 더미 속에서 광주문화재단으로부터 온 신명나는 초대장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며칠 뒤 어느새 빛고을시민문화관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있는 나를 보게 되었다. 흥이 올라 신발 속 발가락까지 춤을 추고 있는!

2011년 5월 28일 토요일, 빛고을시민문화관 광장에서 광주문화예술교육 네트워크 모임 ‘새갈래’의 열두 번 째 두드림으로, 시민과 문화 그리고 예술 상상워크숍 ‘치고-받는 타악노리’가 열렸다.

광장 안에는 신명나는 소리들이 가득 차 있었다. 어깨가 들썩이는 음악소리! 무엇인가 두드리는 소리! 사람들의 웃음소리!

오늘 열리는 상상워크숍에는 많은 문화예술밥상들이 차려져 있었다. 문화예술체험부스 ‘함께노리’ 밥상! 탭댄스를 비롯한 공연 밥상! 사람들과 악기를 함께 연주할 수 있는 합주 밥상!

나는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하나를 들고 즐겁게 밥을 먹으러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꼴깍! 침 넘어 가는 소리! 모두 다 먹음직스러운 문화예술밥상들이었다.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먹어도 절대 과식할리 없는 즐거운 문화예술밥상들!

하지만 이 날 밥상들 중 최고봉은 단연 ‘젬베워크숍’ 그리고 자신의 악기로 즉흥 합주 벌이는 ‘퍼블릭 드림서클’이었다.

최근 가수 10cm의 ‘아메아메아메~’ 노래로 우리에게 더욱 가깝게 느껴지는 악기 젬베는 서아프리카에서 왔다. 말리의 악기라고 하는 젬베는 혼자서 연주하는 악기가 아닌 함께 합주하는 악기라고 한다. 젬베의 합주를 반주로 아프리카 사람들이 격렬하게 춤을 추는 모습이 선하다. 쏟아지는 경쾌한 리듬들! 벌써부터 어깨가 들썩거린다.

하지만 젬베! 처음으로 인사했을 때, 마주 보기에 쑥스러운 악기였다. 워크숍 시작 전 자유롭게 연주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서 쏟아지는 현란한 리듬은 현실에선 보이지 않았다. 그저 어색하게 젬베를 둥 한 번, 둥둥 두 번 두드려보고 있었다.

무표정한 사람들의 얼굴들. 다들 나처럼 젬베와의 어색한 첫만남을 치루고 있는 중이었다. 이는 흥겨운 리듬보다 더 다이나믹한 얼굴 리듬을 선보이시는 이영용 선생님과는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내 얼굴 역시 굳어 있다. 한 번 둥 둥 두드려 보기는 하지만 여전히 어색하고 쑥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몇 분 뒤, 어색해 했던 사람들은 이영용 선생님의 말 없는 리드에 따라 함께 젬베를 두드려가기 시작했다. 점차 휘몰아쳐 가는 리듬들! 공중에 흩뿌려져 있었던 어색한 리듬들이 하나로 모이기 시작하였다. 소리가 그리고 박자가 맞아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점점 딱딱하게 굳어져 있던 내 얼굴이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젬베 두드리기는 씩씩한 어린아이들로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젬베를 얼굴로 연주하는 것은 어른들부터 시작되었다. 꽉 막혀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난 함박웃음꽃이 힘찬 리듬 속에서 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신명나는 것은 젬베를 연주하고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젬베의 흥겨운 리듬은 지나가는 시민들의 발길을 잡기 시작했다. 하나 둘 씩 워크숍 공간으로 모이기 시작했고, 꽃분홍색 옷을 입은 시민 관객 어머님이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오호호호호~! 빛고을시민회관 광장에 아프리카 초원이 보이기 시작한다. 넓디넓은 초원을 뛰어다니는 동물들 사이에서 젬베를 든 사람들, 그리고 이를 구경하던 시민들이 한데 얽혀 이곳저곳으로 신이 나서 뛰어 다닌다. 쏟아지는 박자들을 장신구 삼아 온 몸을 흔들어 대기 시작한다. 60여 개의 젬베들에서 쏟아지는 둥둥 소리들을 온 몸으로 흥겹게 튕겨 내기 시작한다.

우리들의 손이 더욱 빨라져 간다. 한마디 말도 필요 없다. 말없이 서로간의 눈으로 소통하며 신나는 리듬으로 이야기 하며 연주를 이어나가기 시작한다.

“카사래요 카사래요 밤바야 예~!” 이영용 선생님께 아프리카의 카사리듬과 노래를 배우며 연주에 흥과 즐거움을 더했다. 마치 이 노래가 내 귀에는 “가짜래요 가짜래요 밤바야 예~!”처럼 들려서 더욱 어깨가 들썩였다. 여기 모인 60여명의 사람들은 가짜 젬베 연주를 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오늘 처음 접해본 악기, 내 손과 어깨가 가는대로 두드리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게 무슨 문제가 된단 말인가? 우리는 분명 지금 흥겨운 젬베 합주를 해내고 있다. 젬베를 연주하고 있는 내가 즐겁고 함께 연주하고 있는 네가 하나 되어 소통할 수 있는 이 시간! 완벽한 테크닉이 아닌 가짜 소리들이 함께 있어서 더욱 즐거운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바로 열려 있는 문화예술의 현장의 모습이다. 모두가 하나 될 수 있는 이상적인 문화 수도 광주의 모습이다.

오늘 젬베 워크숍 중 내 마음에 와 닿는 가장 멋진 한마디는 바로 이용현 선생님의 질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타악기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두드리는 악기, 때리는 악기라고요? 아닙니다. 저는 타악기란 북(악기) 위에서 어깨가! 팔꿈치가! 팔목이! 손이! 춤을 추는 악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구나! 나는 지금까지 젬베를 손바닥이 원숭이 엉덩이처럼 빨개지라고 무작정 두드리고만 있었다. 온 몸이 경직된 채 선생님이 보여주시는 경쾌한 박자를 쫓아가느라 바빠서 오늘의 이 시간을 즐기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젬베는 무조건 두드리고 때리는 악기가 아니다. 바로 즐겁게 경쾌한 박자에 내 몸을 맡기고 춤을 추는 악기였다.

점차 내 손바닥에서만 맴돌던 소리가 내 마음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두드릴수록 얼얼해져 가는 마음! 나 혼자만의 연주가 아닌 그 자리에 모인 시민들 모두와 함께하는 합주였기에 더욱 얼얼했던 연주!

바쁜 일상 속에서 오늘 하루를 살아내기에 급급하여 진정 소중한 알맹이를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저 닥친 일을 해내라고 내 몸을 두드리고 때리는 것보다 하루 하루에 내 몸을 맡겨 즐겁게 춤을 추어 보자. 오늘이 더욱 즐겁고 내일이 더욱 기다려질 것이다. 내가 꽃 피우고자 하는 알맹이를 잃어버리지 않게 될 것이다.

춤춰라! 손바닥이 마음바닥이 얼얼해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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