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경제 살리기, 사람 살리기 _ 박호재 문화사업실장
작성일2014-08-05
작성자 관 * 자
조회 1056
경제 살리기, 사람 살리기
박호재 _ 문화사업실장
오는 14일 한국을 방문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감동적인 어록을 쌓아가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 언급들이 또한 명쾌하고 거침이 없이 지구촌의 왜곡된 문제들을 적시하며 전 인류적 성찰을 촉구하고 있기에 그때마다 세계인들의 관심을 모으기도 한다.
그 분의 최근 어록들 중에서 특별히 필자의 가슴을 때린 두 가지를 여기에 소개한다.
“늙고 집없는 사람이 노숙하다 죽는 것은 뉴스가 되지 않지만, 주가지수가 2% 떨어지는 것은 뉴스가 된다.”
“‘살인하지 마라’는 십계명을 현대에 맞게 고치면 ‘경제적 살인을 하지 마라’가 된다.”
역대의 교황들이 그런 강론을 편 적이 없기에 의외의 느낌이 들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지극히 성서적이다는 게 필자의 의견이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얽힌 얘기들이 이를 적확하게 증거하고 있다.
그 분의 최근 어록들 중에서 특별히 필자의 가슴을 때린 두 가지를 여기에 소개한다.
“늙고 집없는 사람이 노숙하다 죽는 것은 뉴스가 되지 않지만, 주가지수가 2% 떨어지는 것은 뉴스가 된다.”
“‘살인하지 마라’는 십계명을 현대에 맞게 고치면 ‘경제적 살인을 하지 마라’가 된다.”
역대의 교황들이 그런 강론을 편 적이 없기에 의외의 느낌이 들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지극히 성서적이다는 게 필자의 의견이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얽힌 얘기들이 이를 적확하게 증거하고 있다.
예수의 죽음은 구약에서 속죄양이라는 표현으로 여러 곳에서 예견돼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대목은 예수가 죽음의 동기를 만든 장소로 예루살렘을 택했다는 점이다. 예루살렘은 당시 유대교 순례자들의 성지로 부흥하고 있던 도시였다. 멀리서 찾아온 순례자들을 대상으로 한 숙박업과 환전상, 제물로 사용될 비둘기와 양을 파는 상인들이 도시의 부를 축적해갔다.
성전을 관리하는 제사장들마저 이 같은 축재의 행렬에 적극 동참했다. 심지어는 성전 밖에서 산 제물을 성전 안으로 들여오지 못하게 하고, 성전 안에서 비싸게 판매함으로써 이문의 폭을 넓히는 상행위 까지를 서슴치 않았다. 오늘날 극장이나 장례식장에서 음식 반입을 금지하는 행위와 똑같은 이치다. 예수는 이에 예루살렘으로 들어가 그들의 탐욕을 질타하며 채찍을 들었다. 결국 예수의 행위가 몹시 불편해진 제사장과 상인들은 빌라도에 나아가 반역과 성전모독의 죄몫을 고함으로써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 이뤄지게 된 것이다.
부를 탐하는 인간의 욕망이 예수를 죽음에 이르게 한 셈이다. 유다가 예수를 파는 행위도 이와 동일선상에 놓여있음은 물론이다.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짊어진 ‘대속의 죽음’이라는 성서적 의미가 성립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과정들 때문이다. 성서의 핵심 대목인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관련된 상황들을 돌이켜볼 때 프란치스코 교황의 언급은 기독교 정신의 본질과 원류에서 비롯되고 있음이 틀림없다.
야당의 참패로 끝난 선거가 있기 얼마 전 지인들과의 저녁모임 자리에서 당혹스런 얘기를 들었다. 세월호 때문에 장사가 안돼서 죽겠다. 요식업을 하는 친구였기에 현실적인 어려움을 이해는 할 수 있었지만, 씁쓸한 기분까지를 거둘 수는 없었다. 때맞춰 여권은 경제 살리기를 슬로건으로 내걸었고 압승의 결과를 만들어놓은 것을 보면 그 친구의 얘기가 국민적 정서로 작동됐을 법도 하다.
무능하고 자기 정체성을 상실해버린 야당의 전락은 당연하다. 하지만 가혹하고도 눈물겨운 죽음들을 가까이 두고도 ‘잘 살게 해주겠다’는 경제논리가 아직도 여전히 대한민국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에 필자는 절망했다. 수많은 노동자 농민들, 그리고 도시빈민의 참혹한 삶을 담보로 성장 신화를 일궈온 개발독재의 역사를 온몸으로 체험한 세대이기에 그 절망은 더욱 깊을 수밖에 없다.
선거가 끝난 며칠 후, 가슴 따뜻한 친구와 소주를 한잔 나눴다. 취기가 오른 그가 울면서 말했다. 이제 세월호 애들 어떡하니? 그 후 연일 대한민국 보수언론은 세월호 딛고 경제 살리라는 국민의 기대가 반영된 선거결과라며 분석 기사들을 내놓았다. 정녕 이땅 대한민국에서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살리기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일까?
<2014.8.5 남도일보 화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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