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칼럼

조경미 _ 광주국제영화제 초청·행정 팀 자원봉사

많은 이들의 기억에 초창기의 광주국제영화제는 장나라, 문근영, 박솔미같은 유명 연예인이 왔던 행사라는 인상이 강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때 당시에는 시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부산국제영화제의 약 100분의 1정도 밖에 안 되는 예산으로 국제적인 행사를 꾸려나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11회 광주국제영화제 개막식(10.27(목))은 개막작 '인산인해'처럼 많은 시민들이 모여 산과 바다를 이뤘다.

개막식이나 영화제 기간에 상영되는 영화에 대한 문의 전화도 작년에 비해 많이 늘어났고 언론사의 취재 요청이 많았던 작년에 비해, 올해는 시민들의 영화 상영, 예매 등에 관한 문의가 많았다. 언론사의 보도 뿐만 아니라 GV(관객과의 대화)가 생긴 점, 소셜 커머스 쿠폰 등으로 영화제에 대한 흥미와 쉬운 접근법을 제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제 사무실 스태프들도 시민들의 꾸준하고도 새로운 관심을 위해 계속 힘쓰고 있다.

평소에 봉사활동에 관심이 많아 전문봉사, 재가봉사, 지역사회봉사 등을 해 오던 차에 광주국제영화제에서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글을 보게 됐다. 광주에서 열리는 국제적인 행사를 현장에서 직접 보면서 봉사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했고, 지난 광주국제영화제 봉사활동에 참여했던 선배들의 경험담을 들었던 것도 한 몫을 했다. 전공을 살려 국제적인 행사에 참여했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으며 새로운 친구들도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는 것이 선배들의 말이었다. 자원봉사자 모집 공지를 보게 됐을 땐 이번이 아니면 정말 안 된다는 생각으로 지원을 했고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이번 제11회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작품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톰보이>라는 영화다. 아버지와, 임신 중인 어머니 그리고 두 자매가 한 마을로 이사를 오는데 첫째 딸인 10살 소녀 로르는 그 마을의 아이들 앞에서 남자아이인 척 행동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아이들을 놀래기 위한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정말로 남자가 되고 싶어 하는 로르의 바람을 표현한 것이다 그런 행동을 하는 로르의 마음은 혼란 그 자체다. 하지만 그러한 혼란은 로르를 남자아이로 믿는 리자라는 여자아이와 함께 사랑에 빠지면서 더 걷잡을 수 없어진다. 결국은 부모님도 로르가 남자아이 행세를 했던 것을 알게 되는데, 10살짜리 아이에게 찾아 온 성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그에 대한 주변의 반응과 시선이 만약 내 주변에서 혹은 가족 중에 이러한 일이 생겼을 경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다. 로르와 비슷한 나이의 아이가 있는 가족이나 후에 가정을 꾸릴 모든 분들에게는 꼭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평소 즐겨보는 영화는 고전영화다. 물론 최근의 3D나 4D 영상 기술에 충분히 매료될 만하지만 1940, 50년대 당시의 기술로 완성시킨, 조금은 허술하면서도 어떻게 보면 우리들의 눈과 귀를 현혹시키지 않고도 정직하게 끌어당기는 매력은 고전영화 쪽이 훨씬 강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스릴러, 추리 등을 좋아해서인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작품을 많이 봐 왔는데 그 중에서도 <로프>라는 작품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니체의 사상을 오해한 두 엘리트 청년이 살인을 저지르고 그 시체를 상자에 담아두고 그 위에 음식을 차려 파티를 연다. 언제 범행을 들키게 될지 모르는 긴장감과 니체의 사상에 대한 주인공들의 의견에 대해 생각해 보게끔 한다. 또한 원 테이크 기법을 쓴 히치콕 감독의 완벽주의적인 연출과 배우들의 섬세한 감정표현이 서로 빈틈없이 맞물려 80분 동안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이 모든 게 1948년에 이루어진 걸 알게 된다면 최고의 영화로 꼽을 만 하다.

영화배우여서 좋은 점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몇몇 배우들이 평소에 경험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고 살아본 적 없는 삶을 살아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장면 안에서도 살아볼 수 있는 인생은 참 다양하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북적대는 시장에서 범인과 경찰의 추격전 장면에서는 범인을 잡으려고 혈안이 된 경찰이 될 수도 있고, 억울하게 누명을 썼거나 지금은 절대 잡혀서는 안 되는 이유를 가진 범인, 그런 추격전으로 인해 하루 동안 팔아야 할 물건들을 쓸 수 없게 된 상인, 또 그런 상황을 지켜보는 엄마와 엄마의 손을 꼭 잡은 아이가 될 수도 있다. 그 찰나에 여러 인생을 맛보고 생각하고 느끼고 결국 현재의 나로 돌아와 내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요새는 고개만 돌려도 외국인들을 볼 수 있다. 캠퍼스에도 점차 다양한 나라에서 온 외국인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젠 길거리나 버스에서 외국인을 보는 것 또한 어렵지 않다. 그 동안 광주국제영화제에 대한 관심은 2~30대에서 초·중·고등학생, 4~50대로까지 점차 확산됐다. 하지만 이것은 한국인 광주 시민에 한했던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여느 지역보다 다문화 가정이 빨리 늘어나고 있는 광주에서 이들의 관심도 광주국제영화제로 돌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각 다문화 가정의 출신 국가에 대해 조사를 해 그 나라의 대표작을 상영해도 좋고, 또 그들에게 직접 설문을 해서 높은 수요가 있는 작품을 상영해도 좋다. 혹은 한국에 들어와 살고 있는 다문화 가정을 주제로 한 작품 또한 그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그들 스스로 광주에서의 자신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될 것이고 또 그들의 작품을 본 우리 역시도 그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벌써 제 11회를 맞는 광주국제영화제. 영화제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고, 광주에 거주하는 시민과 다문화 가정 뿐 아니라 타 지역의 다문화 가정들, 외국인들까지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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