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문화도시 광주’…찾아온 기회를 놓칠 것인가?
작성일2015-05-04
작성자 관 *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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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시 광주’…찾아온 기회를 놓칠 것인가? |
서영진 광주문화재단 대표이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준공을 앞두고 ‘광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 지역 문화예술인들은 물론 다른 지역에서도 전당개관일과 행사, 콘텐츠 등을 묻는 사람이 많다. 흥분되는 일인데 마음 한 쪽은 불안하다. 새로운 일은 언제나 ‘안개’를 안고 출범하기 때문이다.
지난주 일본히로시마를 다녀왔다. 일본의 문화예술관계자들과 ‘도시정체성과 지역활성화’를 주제로 얘기하던 중 “광주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무슨 도시냐?”고 물어왔다. 히로시마는 ‘비핵 평화도시’를 도시정체성으로 삼고 있다. 핵 없는 세상을 통한 세계평화의 추구다.
광주는 ‘민주·인권·평화도시’를 도시정체성으로 삼고 있는 것은 모두가 안다. 이를 한마디 단어로 말해 달라는 일본인의 물음에 잠시 당황했지만 이렇게 답했다. “광주와 히로시마는 ‘평화’가 공통분모다. 그러니 평화를 중심에 놓고 도시발전을 추진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상대방도 나의 말에 동의했지만 ‘광주의 평화’는 좀 불선명하다.
평화는 무형의 것이다. 평화를 어떻게 이루어야 할까에 대한 정확한 방향과 시민의식이 필요한데 그것이 광주는 확실하지 않다. 평화도시-히로시마는 유형의 핵폭탄을 지구촌에서 추방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광주는 민주·인권과 함께 평화로운 도시를 만들자는 뜻인데, 민주도, 인권도 평화처럼 눈에 보이거나 손에 쥘 수 없는 무형의 것이다. 무엇이 민주이며, 무엇이 인권인가. 어렵다. 그래서 무엇으로 광주가 추구하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갈 것인가를 생각하면 대답이 궁색해 진다. 민주·인권·평화의 도시-광주를 만드는 구체적 방법-수단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5·18이전에 광주는 흔히 ‘예향(藝鄕)·의향(義鄕)·미향(味鄕)’이라 했다. 이 또한 맞는 말이고 시민의 긍지다. 광주는 한국문화의 원류를 이루어 왔고, 의리(義理)를 내세워 왔으며, 음식이 다양하고 맛도 특별한 지역이다. 그러나 광주특성을 한마디로 나타내라면 당황스럽다. 예술, 의리, 음식-무엇을 앞에 내세워야 할까?
‘광주를 대표하는 음식이 무엇이냐’고 물어도 잠시 헤맨다. 전주비빔밥, 나주곰탕, 벌교꼬막, 춘천닭갈비처럼 딱 떠오르는 것이 없다. 그래서 ‘다 맛있다’는 말로 더 애매하게 만든다. 예향도 그렇다. 대표적인 예술은 무엇인가. 비엔날레가 있고 미술인수가 가장 많으니까 미술인가? 특징은 많은데 특징이 없다.
프랑스의 작가 플로베르는 ‘한 사물을 표현하는 데는 한 단어밖에 없다-일물일어(一物一語)’라고 했다. 광주에 가장 어울리는 단어를 찾을 필요가 있다. 예향·의향·미향을 한꺼번에, 민주·인권·평화를 한마디로 집약할 수 있는 단어는 무엇일까.
세계의 수많은 도시들은 저마다 각각 도시의 특성과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헐리우드는 영화의 도시, 파리는 예술의 도시, 밀라노는 패션의 도시, 뉴욕은 국제경제와 외교의 중심지, 앞서 말한 히로시마는 세계평화도시 등등. 광주는 아시아문화예술의 중심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중이다. 그런데 구체적 전략이 흐릿하다.
광주를 비롯한 전라도는 역사적으로 ‘인간애’가 남다른 지역이다. 임진왜란때 진도사람들이 왜군시신을 수습해 묻어 준 왜덕산(倭德山), 전국에서 가장 많은 의병활동, 광주학생독립운동, 4·19학생혁명의 시발점, 80년 광주민주화운동, 캄보디아를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실시중인 의료활동과 인권운동 등등. 광주엔 ‘사람사랑’의 발자취가 강하게 배어있다.
세월호사건 이후 전국을 돌았던 그 가족들은 “광주·전남은 타 지역과 확실히 다르더라”고 말했다. 광주와 전라도 사람들의 인간애-그것은 독특한 DNA다. 그것은 한마디로 ‘인간애-사람사랑’이 아닐까. 이는 국제사회도 인정하는 광주의 특성이다.
사랑 또한 인권이나 평화처럼 무형이지만 우리들 생활 속에 배어있어 손에 쥐어지는 단어다. 교통질서를 제대로 세우거나, 무고투서가 없는 고을이라는 것 하나만 제대로 실천해 보자. 그것이 인간애의 본령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청년’ ‘장애인’ ‘다문화’ 등 특정분야를 내걸고 ‘사랑의 도시-광주’를 만들자. ‘상품’도 특별해야 눈길을 끈다.
광주는 지금 개시(開市)이래 최대의 ‘골든타임’을 맞았다. 광주~서울 KTX가 개통됐고, 7월엔 세계 180여 국가의 대학생 선수단이 참가하는 유니버시아드대회가 열린다. 9월에는 말도 많던 아시아문화전당이 개관한다. 10월에는 세계디자인 총회가 기다리고 있다. 광주의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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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4. 21.(화) 무등일보-아침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