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를 말해봐

건축이 다시 화두다. 2011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핵심적인 볼거리는 '폴리'라는 건축물이다. 문화중심도시 만들기의 핵심사업 역시 '전당' 짓기다. 건축이 도시 문화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말이다. 때마침 폴리를 가꾸는 사람들을 만든 건축사 이순미 건축사사무소 미가온 대표, 양동시장프로젝트를 진행한 백형주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특별연구원이 광주의 건축과 광주폴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어떤 만남

이순미(이하 이) : 꼭 작년 이맘 때였지. 양동시장 옥상에 비엔날레 특별관을 만드는데 있어 공사기일과 공사비 모두 부족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느라 진땀을 뺐었지. 공사 기간 중 절반이상이 비가 내리고, 공사현장도 시장이라는 악조건에, 그야말로 전쟁을 치렀는데 말이야. 1년쯤 지나고 보니 그 어려웠던 순간이 아름다운 추억이 됐지 뭐야. 그 언저리에서 백형주라는 좋은 후배도 만났고.

백형주(이하 백) : 말도 마세요. 문화와 관련해서 이런 저런 일들을 치러봤지만, 건축이라는 장르와 융합된 과제는 난생 처음이라 아주 혼쭐이 났어요. 그나마 작년에 만들어진 시장속 복합공간-양동문화센터(YCC)을 중심으로 전통시장과 지자체가 진화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니 뿌듯하더라구요. 올해 노동부주관 전국 브랜드 경진대회에서 양동시장형 사회적기업 모델이 전국 우수 사례로 선정됐다네요.

이 : 축하해. 어제 신문에서 봤는데 무슨 일이든 지속가능성과 감성을 담지하지 못하면 비용낭비, 인력낭비 아니겠어.

백 : 그러게요. 여하튼 내년쯤에는 전통시장에 도서관이며, 지역이통센터를 갖춘 고객센터 하나 지읍시다. 누님과 또 한 번 뭉쳐야 할 일이죠. 하하

이 : 그래, 예산확보며, 인허가며 주민동의 등등 풀어야할 일이 산적하지만, 너무 쉬운 일은 재미없잖아. 백형주가 추진하면 나는 콜이다. 문화가 맘껏 깃들 수 있는 그릇을 열심히 만들어 보자구.

■ 문화도시 광주의 건축 혹은 문화

이 : 2014년에 완공될 아시아 문화전당은 국제현상설계를 통해 진행됐지. 다시 말하자면 제대로 된 절차와 격식을 갖추어 선정된 건물이지. 이제 곧 시민들이 문화전당의 완공을 목도하겠지만  아시아문화전당이 세워지기까지 랜드마크 논쟁, 별관 철거 문제 등 여러 가지 논란도 많았어. 지금은 이런저런 잡음이 봉합된 상태이지만 완벽하게 치유된 건 아니라서 건축인으로서 답답한 구석이 없지 않아.  

백 : 저 같은 비전공인은 건축이라는 것을 “주거든 교류든 특정 목적을 위해 공간을 채우는 작업”정도로 이해하는데요. 아시아문화전당 건립과 관련하여 “무엇을 채울 것인가”의 논의는 많았지만 “어떻게 채울 것인가” 혹은 “어떻게 가꿀 것인가”의 논의는 상대적으로 미진했던 것 같아요.

이 : 맞아. 디자인비엔날레에 즈음해서 진행하는 광주폴리도 아쉬운 부분이 많아.

백 : 건축인의 시각으로 광주폴리의 위상에 대해서 좀 언급해 주시죠

이 : 광주폴리는 애초에 “어반폴리”라는 이름으로 기획된 도시디자인 사업이잖아. 작년 하반기에 의제가 나오고, 올해 디자인 비엔날레에 광주읍성터 주변에 10개, 푸른길에 3개 이렇게 13개의 폴리가 들어서거든. 세계의 유명한 거장 건축가들의 작품이 광주라는 도시에 한자리에 모이는 거야. 이러한 일은 전세계를 둘러보아도 광주가 유일하다고 할 수 있지.

백 : 그러나 광주문화도시 관련 기획개발 사업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기획자 혹은 전문가 그룹에게 오리엔테이션이 안 된 사업이라고 봐야죠. 추진 주체들만 애가 닳고요.

이 : 그런 면이 있지. 폴리 작가 중에 피터 아이젠만 같은 경우는 쉽게 비유하자면 현대 건축계의 “비” 또은 “서태지”라고 할 정도의 사람이거든. 그런데 문제는 건축에 종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알려져 있지 일반 시민 사회에서는 전혀 모르는 이방인일 뿐이라는 거야.

■ 2011광주폴리 짚어보기

백 : 광주폴리와 관련해서 가장 지적할 만한 문제가 무엇인가요.

이 : 사전준비지. 이를테면, 시민사회에 이 프로젝트를 널리 알리고, 폴리를 설치하고 가꾸는 과정에서 시민 스스로 자신의 미션을 발견할 수 있도록 추진했으면 좋았을텐데. 주지하다시피 이번 디자인비엔날레의 주제는 도가도비상도야. 오브제나 형상만이 디자인이 아니라 우리의 주변환경과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배려로 소통하겠다는 것이지. 그리하여 관계와 관계가 또 다른 관계를 형성하면서 시민의 일상적 삶과 함께 하겠다는 것이지. 이런 면에서 보자면, 광주폴리가 과연 그 주제를 반영하는 시설물인가, 주변 환경과의 관계는 어떻게 풀고 있는가, 옛날의 광주읍성터를 따라서 만들어 지고, 아시아 문화전당을 감싸고도는데 이들과의 통시대적 접점은 있는가, 그리고 폴리 주변을 지나는 행인이나 인근 상가의 상인들과는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궁극적으로는 어떻게 하면 광주시민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광주폴리가 되나.... 하는 이런 문제들이 현안이지.

백 : 건축사님 말을 들으니 몇 가지 시사점이 있네요. 공적재원을 투입하고, 관에서 주도하는 사업이 가지는 한계가 분명히 보이고요. 이를테면 시경(詩經) 대아(大雅)의 영대(靈臺)라는 구절에서 지적하듯이 어진 임금이 국가적인 사업을 추진하면, 백성들이 제 일인 듯 발 벗고 나서는 장단과 흥이 있어야 할 텐대요.

經始靈臺(경시영대) 영대(靈臺)의 역사(役事)를 일으키시어

經之營之(경지영지) 땅을 재고 푯말을 세우셨더니

庶民攻之(서민공지) 백성들이 제 일인 듯 발 벗고 나서

不日成之(불일성지) 며칠이 가기 전에 이루어졌네.

또 하나 “타지마할”을 들여다 봅시다.

무굴제국의 황제 샤자한이 너무도 사랑했던 왕비 몸타즈 마할이 죽자 당시 세계의 유명한 건축가들을 초빙하고, 2만 여 명의 인력을 동원하여 22년간 조성한 무덤이 타지마할입니다.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무덤건축으로 평가 받고 있지요. 붉은 사암으로 치장한 성곽이며, 300미터의 수로며 하얀 대리석의 외장은 그야말로 환상적입니다. 그러나 수 십 년간 진행한 사치스런 공사로 말미암아 샤자한 왕은 폐위되고 당시 무굴제국의 백성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도탄에 빠졌습니다.

이 : 그래 동감하지. 관 주도적 사업은 시민들이 기꺼이 제 일인 양 참여할 수 있는 접점이 필요해. 그리고 두 번째 거론했던 “타지마할”이 당시에는 백성을 착취하는 괴물이었지만, 지금은 인도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관광자원이 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 아니겠어.

백 : 광주폴리를 조성하는 것이 정당한 사업인지 아닌지를 논의하는 것도 중차대한 일이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는 기왕 저질러진(?) 광주폴리는 어떻게 알리고 가꿀 것인지를 논의하는 게 낫겠네요. 광주폴리가 들어서는 장소가 대부분 인도이기 때문에 보행이나 차량주행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고요. 민원 때문에 실제로 공사를 중단한 사례도 있던데요.

이 : 문제는 다양한 측면에서 사전에 준비하지 못했다는 점이지. 광주폴리가 문화도시광주에서 어떤 위상을 차지하는지, 제대로 된 공청회나 종합계획 수립을 거치지 못한 점을 지적할 수 있겠어. 일각에서는 유명한 세계적 작가들의 빼어난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는 시민들의 문화수준을 폄하하는데, 광주폴리같은 장기적이고 국제적인 계획을 제대로 시스템을 갖추어 진행하지 못한 점이 가장 큰 문제이지. 일련의 광주폴리 조성사업은 문화정책 혹은 문화행정의 미숙함의 사례로 지적할 수 있겠어.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광주폴리는 만드는 사람(문화행정가+작가)의 외연이 확장되어 광주폴리를 가꾸는 사람들(문화행정가+작가+시민)로 함께 해야 하지 않을까

■ 10년 후 건축 in 광주

백 : 동감입니다. 무슨 일이든 사람이 중요하죠. 유명한 건축가를 초빙해 광주폴리를 조성하는 사업의 또 다른 측면으로 광주폴리에 깃들어 사는, 그 앞을 왕래하는 시민의 일상이 있잖아요. 자연스럽게 광주폴리가 시민의 일상으로 들어오게 하는 내러티브의 창조와 관련한 진전된 논의가 필요하겠구요. 나아가 “도시디자인 창조인력 양성사업”같은 문화예술전문교육 프로그램을 구동했으면 좋겠어요. 광주폴리를 만들고, 가꾸고, 그곳에서 뛰어노는 일련의 모든 활동들을 진지하게 탐구하는 프로그램들을 구동해 보는거지요.

이 : 지난한 현안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광주폴리 조성사업의 긍정적인 측면은, 세계의 유수한 건축가들이 디자인한 폴리가 광주라는 도시에 한데 모인다는 것이지. 건축과 관련된 사람이라면 정말 가슴 설레는 프로젝트야. 건축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도 외국에 가면, 그 나라의 문화를 고스란히 담은 건축물을 관광하는 것이 필수 코스잖아. 이를테면 스웨덴이라는 나라는 가우디라는 걸출한 건축가가 그 나라를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당초 계획대로 10년 안에 100개의 걸작 폴리가 광주 곳곳에 들어선다면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을 것이며, 이것은 광주라는 도시를 알릴 수 있는 확실한 경쟁력을 점유할거야.

백 : 낙관적인 이상은 분명히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진행할 추진과정은 시민의 동의와 관심을 통해야 한다는 숙제가 남겠네요. 올 해 사업의 전말을 꼼꼼하게 따져보고, 다음 사업에서는 분명히 개선된 시스템을 적용해야 할 것 같아요. 시민들이 제 일인 양 쓸고 닦고 가꾸면서, 먼 훗날이 아니고 바로 오늘 여기에서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문화적인 소통을 할 수 있도록 말이죠.

이순미씨는 현재 대학에서 건축설계를 가르치면서 건축사 사무소 미가온을 운영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장애없는 세상만들기 프로젝트를 통해, 공간적 장애를 해소하는 유니버셜 디자인 운동을 주도하는 당찬 여성 건축가이다.

백형주씨는 현재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특별연구원이며, 광주의 문화예술기획자그룹의 놀이터인 문화도시공작소를 운영하고 있다. 문화정책, 지역개발, 커뮤니티디자인, 전시공연 등 문화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에 부지런히 촉수를 놀리는 몽상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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