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문화탐험

조선미 _ 광주문화재단 문화관광탐험대

아침, 저녁으로 가을 기운이 완연하다. 유난히 비가 잦았던 올여름인데 가을장마가 들었는지 비소식이 끊이질 않는다. 이맘때부터의 햇살은 곡식을 토실토실하게 살찌우고 땅 밑의 구근을 튼실히 하며 가을의 풍요를 선사하기에 참으로 소중하다. 하여 햇살을 마중하러 지산동 초옥을 찾았다.

빛이 머무는 3代 화가의 산실

“온 세상의 빛이 이곳에..”라고 고은 시인이 칭송했듯 지산동 어귀부터 밝음이 전해져왔다. 무성한 잎을 드리운 두 그루의 당산나무를 지나 아담하게 자리한 초옥을 찾을 수 있다.

초옥 뒤편으론 무등산 자락이 잘리어 고가도로가 시야를 막았고, 집 앞 도로는 예전에 냇물이 흘렀으나 복개되었음을 직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롯이 남아 옛 정취를 간직한 초가집. 광주 유일의 초가집이란다.

솟을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초가 지붕 위에, 마루에, 마당에 귀한 햇살이 가득하다.

문득 김영랑의 시‘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가 읊조려진다.

비가 잦아 풀과의 전쟁을 치렀을 법한데 잡초 한 포기 없이 손질된 마당과 채송화가 겸손히 꽃을 피우고 있는 소박한 정원을 보노라니 집주인의 정갈함이 읽혀진다.

이 초옥은‘빛을 그린 화가’오지호 화백이 1953년부터 작고할 때까지 30여 년 간 살며 작품 활동을 하던 집이다. 120여 년 전에 지어진 4칸짜리 초가집으로, 1986년에 원형을 살려 보수를 했다. 광주시 기념물 제6호로 지정돼있다.

이 자그마한 초옥에서 한국 현대 화단의 거목인 고(故) 오지호 화백, 오방색 풍수로 우리 화풍을 세계에 알린 고(故) 오승윤 화백 그리고 아들인 서울대 출신 서양화가 오병제까지 그야말로 3대를 이은 화맥(畵脈)의 일가를 키워냈다. 어디 그뿐인가? 오지호 화백의 장남인 오승우화백과 그 아들들인 오병욱, 오상욱씨는 각각 서양화와 조각을 전공했다. 그리고 고 오승윤 화백의 맏딸 오수경도 화가가 됐으며 맏아들 오병희는 미술사를 전공해 광주시립미술관에서 학예사로 일하고 있다. 가히 화가(畵家)를 이룬 산실인 것이다.

초옥 뒤란으로 발길을 옮기니 정갈함이 배어나는 장독대가 가지런하면서도 소담스럽게 햇살을 받고 있었다. 햇살은 바지런히 봉숭아 꽃과 무화과 나무를 오가며 가을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북으로 창을 낸 화실

‘그늘에도 빛은 있다’고 생각했던 오지호 화백은 그늘은 빛의 결여가 아닌 빛의 변화라는 인상철학을 창안하였고 그리하여 한국의 자연을 그대로 반영하는 한국적 인상주의를 완성할 수 있었다.

초옥 맞은편에 자리한 화실은 오지호화백의 회화론이 반영되어 1953년에 지어졌다. 아들인 故 오승윤 화백도 물려받아 사용했기에 두 부자의 세월의 더께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오지호화백은 제자들에게도 “화실의 크기는 12평이면 되고 정북향이 기본이네”라고 가르치며 직접 화실을 설계했다. 빛의 변화가 무쌍한 남쪽의 창은 두꺼운 커튼을 사용해 빛을 차단하고 대신 채광이 일정한 북쪽의 빛을 살린 것은 빛에 민감한 인상파 화가다운 작업실 모습이었다.

작업실 내부는 마치 작업하다 잠시 자리를 비운 것처럼 이젤 주변에 유화물감과 붓들이 놓여 있어 두 분의 체온과 손길이 느껴지는 듯했다.

또한 수많은 작품들이 여기서 탄생했으니 7평 정도의 공간이 우주 공간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오지호화가의 대표작인 ⟪남향집⟫(1935)에서 느낄 수 있는 생명의 충만함과 자연을 담은집은 화실에서 바라본 초옥의 모습과 너무도 닮아있다. 뒷동산을 닮은 지붕선과 움직이는 햇살을 바라보며 한국적 정서에 어울리는 작품들이 탄생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싶다.

따스함, 평화로움, 밝음의 정서가 베인 이곳에서 대를 이은 화가가 탄생하는 것도 당연하다.

예향, 빛으로 키운 이름

의재 허백련(許百鍊)과 오지호(吳之湖)는 광주가 자랑하는 두 거장(巨匠)이다.

한국 남종화의 대가인 의재와 한국 인상파의 거목인 모후산인으로부터 이어진 남도 화단의 큰 맥(脈)은 매년 개최되는 광주비엔날레로 그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광주비엔날레는 이제 아시아를 넘어 세계미술대전으로 명성을 쌓아가고 있으며 지역 작가들의 세계 무대로의 진출도 활발하다.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오지호(1905-1982)는 서양화단의 원로였음에도 서울이 아닌 고향에 머물며 남도 서양화단의 기초를 닦았다. 또한 1946년엔 조선대 미술학과를 열어 현대미술교육기관을 설립하게 된다. 이는 지역 서양화단의 잠재적 미술인 육성과 화단의 현대 미술의 기반을 다지는 계기가 됐다. 그의 아들인 오승윤 화백은 전남대 예술대학을 창설해 전남대 예술대의 예맥을 형성하게 된다.

광주를 빛고을 또는 예향의 도시라 칭하는데 빛을 그린 화가 오지호의 삶과 예술정신이 그 탄탄한 뿌리가 되었음을 이제 알겠다.

가을이 무르익을 때쯤 또 한 갈래 화맥(畵脈)인 의재 미술관을 찾아 수묵의 향에, 의재 선생님의 예술혼에 취해봐야겠다.

산실의 어머니-이상실 여사(64)

서양화로 3대를 이어온 이 집안의 중심엔 이상실 여사가 있다. 오지호화가의 둘째 며느리이자 오승윤 화백의 미망인이요, 오병제 화가의 어머니이다.

‘집에 반해 시집왔다’ 할 정도로 이 집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집안 구석구석에 그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초옥 뒤란의 텃밭을 “내 운동장이예요”라 말하며 종일 쉼 없는 손놀림으로 부지런히 가꾼다. 그렇게 가꿔진 생명들은 이 집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따스한 감동으로 선물된다. 지난 가을엔 유자차를 내 놓으시더니 올봄엔 ‘백매실을 담궈 보았다’시며 맑은 매실차와 손수 만든 김부각으로 다과상을 차리신다. 그러고보니 이집이 주인을 꼭 닮았다. 은은한 미소처럼, 단아한 자태처럼..! 툇마루에 가득하던 햇살에 평화가 머문다. 마당에 널린 홍고추에도 가을 햇살이 곱게 내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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