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칼럼

민문식

이상준 교수 _ 동신대 건축공학과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많은 건축물들이 지어지고 많은 건축물들이 사라진다. 건축물도 유기체와 똑 같아서 생성, 성장, 소멸의 과정을 거친다. 이와 같은 건물과 도시의 유기체적인 과정을 면밀하게 분석해보면 변하지 않는 큰 흐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을 思潮라고도 한다. 사조는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건축가나 예술가들에 의해 탄생되는 것이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예술가들이 전문업계와 학계, 사회에서 인정받게 되면서 트렌드화 되고 시간이 흘러 사회적 검증을 받게 되면 사조가 되는 것이다.

세상의 건축가들이 19세기의 산업혁명으로 인한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기존 관행의 건축디자인을 답습하고만 있던 시기가 있었다. 강철, 철근콘크리트, 엘리베이터등의 발명과 함께 이루어지는 시대사상을 외면하고 고정관념의 디자인으로만 접근하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시대사상을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배우고 익혀서 건축의 흐름에 큰 획을 그었던 건축가들을 우리는 거장이라고 부른다. 변화하는 건축재료와 기술을 십분 활용하여 캔틸레버의 원리를 적용한 ‘낙수장(Falling Water)’, 로비하우스,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 등을 설계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당시에 저층위주의 주거단지에서 고층의 마르세이유 아파트먼트를 디자인한 르 코르뷰지에, 혁신적인 건축과 디자인 교육의 메카 바우하우스를 창시하고 파트너쉽과 국제주의 건축방식으로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 그로피우스, 미이스 반데르 로에, 안토니오 가우디 등도 거장으로 불린다.

한국에서는 거장의 다음 세대로 이들에게 배워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한 거장들이 있었다. 바로 김중업과 김수근.

김중업은 르코르뷰지에를 사사하고 전통건축이 가지는 형식성의 문제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였다. 주한프랑스대사관의 콘크리트 지붕 처마선을 직선과 곡선으로 처리한 형태, 단아함 등은 한국현대건축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된다. 육군박물관, 진주문화회관, 평화의문 등 많은 유작이 있다.

김수근은 한국건축에서 등장하는 독특한 공간구성방식을 깊이 있게 탐구하면서 독특한 작품세계를 창조하였다. 붉은벽돌, 즉 벽돌을 가장 인간적이고 한국적인 건축재료로 보고 ‘건축은 빛과 벽돌이 짓는 시’라 하여 벽돌건물을 즐겨했다. 공간사옥, 경동교회, 불광동성당, 마산성당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재정난에 큰 타격을 입으면서도 1966년(김수근 35세때 창간)에 창간한 월간종합예술지 ‘공간’을 타계할 때까지 끝까지 지켜 현재에 이르게 하였다. 소극장 ‘공간사랑’을 운영하면서 공옥진․김덕수 등의 인물을 발굴해 낸 일련의 문화활동등. 그의 다방면에 걸친 한국문화에 대한 지원으로 인해 1980년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지가 서울의 메디치라고 평가하였다.(르네상스 시대의 예술 후원가인 로렌초 데 메디치(1449∼1492, Lorenzo de’ Medici)는 피렌체의 권력자이며 르네상스의 산파역할을 한 인물) 서슬퍼런 군사정권 시절에 후배 건축가의 증인으로 나와 변론을 도와주는 훈훈한 인간미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두분의 건축가가 타계하기전에 광주에도 작품을 남겨두었다 한다. 김중업 건축가는 현상설계 공모전에서 당선되어 광주 월산동 구릉에 유리의 랜드마크 MBC사옥을 남겼다. 건축가 김수근도 광주에 작품을 남겼다. 옛 전남도체육회관(1981, 현 빛고을 시민문화관 별관)이 그것이다. 벽돌을 주 외장재로 사용하였는데 체육회관이라는 기능을 수용하면서 주변 암반과 자연지형, 레벨차이를 절묘하게 극복하여 자연과 주변과의 조화를 잘 이룬 작품이다.

이런 소중한 건물이 헐릴 위기에 놓였었다. 당초 기존의 구동체육관과 (구)전남도체육회관을 철거하고 빛고을 시민문화관을 5층규모로 신축하려 했었다. 광주공원의 조망권과 광주천의 개방감을 확보하기 위해 4층으로 축소하고 그 축소된 공사비로 (구)전남도 체육회관을 리모델링하여 사무실로 사용하자는 안이 최종확정되어 다행히 철거를 면했다. 현재는 빛고을 시민문화관 별관으로 사용되면서 그나마 ‘뒷방마님’으로 간신히 ‘몸체’만을 보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담당 공무원의 설계변경 행정이 없었더라면 (구)남광주 역사, (구)한국은행, (구)광주시청사등과 함께 역사속의 뒤안길로 사라졌을 것이다.

바로 옆의 (구)시민회관도 마찬가지의 상황이었다. (구)시민회관도 타계한 지역의 원로 건축가이자 전남대 교수였던 임영배 교수의 대표작품으로 한국의 근현대건축에 있어, 1950년대 근대건축양식과 1970년대 포스트모던건축양식 사이의 전이과정을 그대로 담아낸 완성도 있는 건축물로서 건축사적 가치가 매우 큰 건물이다. 이 건물도 다행히 전문가들과 시민단체, 언론 등의 도움으로 광주시 당국에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이제는 이를 전국 지명현상설계로 리모델링 하여 귀중한 문화자원으로 활용한다고 한다.

광주는 이제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로서 세계적 경쟁력을 견인할 글로벌 문화도시로 나아가야 한다. 작은 나라의 지방 도시에서 벗어나 수준 높은 문화를 향유하기 위해서 반드시 명심해야 할 사항이 있다. 그 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가까이에 있다. 우리 주변의 자연환경 즉 산과 구릉, 강과 하천등을 잘 보존하는 개발방식과 우리 선배들이 땀흘려 만들어논 환경 중 경쟁력 있는 부분을 잘 골라서 활용하는 문화적 자원 등을 잘 보존하고 활용해야 한다는 지극히 교과서적인 내용이다.

세계적인 선진국의 도시들을 보라. 극히 첨단의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음에도 200년 건축물, 100년된 건축물, 50년 건축물, 20년된 건축물, 10년된 건축물등 선배들과 후배들 건축물들이 맥락과 조화를 유지하면서 지속가능한 도시가 되고 있지 않은가? 2, 30년만 되면 모두 쓸어버리고 재개발, 재건축하는 우리네 개발방식과는 너무도 다른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은 점 때문에 도시 자체가 정체성을 확보하게 되고 경쟁력을 확보하게 되어 특별한 산업이 없어도 국민소득 4, 5만달러의 문화생활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광주에는 전남여자고등학교 구 본관, 서석초등학교 서석관, 중앙초등학교 본관, 조선대학교 대학원, 조선대학교 본관, 수창초등학교 본관, 전남대학교 사회교육원, 수파아여자고등학교 수피아홀, 원각사, 남동성당, 북동성당, (구)전남도청 본관, (구)전남도청 민원실, 오웬기념관, 전남방직, 일신방직등 근대건축문화자원이 도처에 존재한다. 또한 유명한 건축가들이 설계하고 시공한 현대의 건물들. 광주시 조례에 의해 수상한 건물들... 의재미술관, 광주시청사, 건축사회관, 기독교방송국, ‘ENTER'테마빌딩 등. 또한 최근의 폴리 건축물 등 찾아보면 문화자원으로서 관리해야할 건축물들은 너무도 많다.

일단 근대건축물 이후의 경쟁력 있는 관리해야할 건축물들의 대상찾기와 이를 관리대장에 올리는 ‘문화건축물 관리대장’작업이 우선적으로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위에 열거한 건물들이 아무런 대책도 없이 언제 어디서 소리없이 사라져 버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관리대장이라도 있어야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만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문화재관리대장’등 딱딱한 국가법의 행정만을 좇는 방식으로는 정체성 있는 문화광주가 불가능하다. 우리 광주만의 정체성 있는 문화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문화관련 건축물을 조사해 관리하고 이를 공간계획에 반영하여 점에서 선으로 연결시켜주는 기본 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을 누가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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