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칼럼

박한얼

저에게 책은 휴식입니다. 지칠 때 제게 주는 최고의 놀랄만한 선물이니까요. 아프가니스탄 눈 내린 시골 마을에서 빨간 석류를 발견할 수 있고, 안데스 산골짜기 통나무집에서 끓고 있는 옥수수죽 냄새를 맡을 수도 있어요. 아름다운 글귀를 선물 받고 모습을 상상하며 즐거운 판타지 속 친구도 소개받습니다.

책은 비밀의 세계로 달리는 ‘자동차’나 ‘비행기’도 될 수 있습니다. 그 자동차는 가지 못하는 곳이 없고 연료가 닳지도 않습니다. 그러다 언제나 종착지인 제 마음 속으로 돌아옵니다. 이런 책은 제게 가장 좋은 친구입니다. 책을 읽으면 간단한 지식부터 다양한 간접경험, 과학, 역사적 지식 같은 여러 꺼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책은 남녀노소, 장소, 빈부의 차에 상관없이 누구나 편하고 즐겁게 즐길 수 있는 평등한 여가입니다.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생활에 여유가 생겼다는 뜻입니다. 똑같은 쳇바퀴에서 벗어나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삶이 좀 더 풍요로워지겠죠?

그래서 제가 직접 책을 써보았습니다. 어른들이 쓰는 성장소설이 아니라 제 스스로 성장하는 모습을 담고 싶었어요. 제 책은 세 개의 단편인데 친구들이 공감하는 책을 쓰고 싶어서 주인공이 모두 학생이에요. ‘나의 작은 나무 동굴에서’는 사교육의 압박을 못 견딘 한 초등학생이 산으로 가출하는 내용입니다. 힘든 아이들은 가출을 해도 좋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야기 속 주인공은 가출이라는 경험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방법을 찾아내었고 저는 책을 읽는 분들도 어떤 방식이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직접 알아내기를 바랐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제 책 제목이기도 한 ‘바이달린’입니다.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은 주인공 달이가 힘든 과정을 딛고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엄마, 오빠, 아빠를 가슴 아프게 잃지만 달이를 고통에서 벗어나 하늘에 있는 가족들을 만나게 해주는 것이 음악입니다. 지금 좌절하고 있다면 아프지만 씩씩한 달이를 보면서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마지막 이야기 ‘화분’은 학교에서 일어날 수 있는 친구들 사이의 갈등과 우정을 이야기 합니다. 아마 친구들이 이 이야기에 가장 많이 공감할 것입니다. 이야기 속 인물들이 겪는 갈등은 바로 우리 교실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니까요. 우리는 성적이 떨어진 것보다 친구들끼리 오해가 생기는 걸 가장 힘들어하죠. 우리에게 생긴 갈등을 어른들이 상상하는 시선이 아니라 우리들 식으로 해결하는 것을 보면서 소설 속에서 ‘내’ 모습이 보일 것입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경청』을 권하고 싶어요. 『경청』은 주변 사람의 말을 듣지 않았다가 실패한 사람이 다시 그 자리를 회복하기 위해 겪는 어려움을 이야기한 책입니다. 요즘엔 바쁘다는 핑계로, 듣기보단 말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죠. 하지만 들을 수 있는 태도가 자신을 성숙하게 이끌 수 있습니다. 서로 의견을 나누고 보완할 것은 함께 고쳐나가는 ‘듣기’야말로 화합의 첫 번째 단계입니다. 들어갈 곳 없는 말이 제 자리를 찾아가게 해 줄 이 책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요즘에 저는 손톤 와일더의『어린 시절』을 읽고 있습니다. 세 아이들이 부모의 무관심과 억압 때문에 얻는 고통을 ‘장례식 놀이’를 하며 풀어내는 이야기입니다. 놀이를 하면서 엄마와 아빠가 등장해 아빠가 골프만 치고 엄마가 쇼핑만 하는 이유와 아이들이 왜 엄마 아빠가 없어졌으면 하는지 이유들이 드러납니다. 짧은 희곡이지만 우리 사회에서도 느낄 수 있는 어른들의 어려움과 아이들이 겪는 압박감을 상징적으로 담아서 여러 번 곱씹으며 읽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아는 도서관은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책 읽는 장소는 많이 압니다. 버스정류장은 시집 읽기에 좋습니다. 소설을 보다가는 버스를 놓치기 쉽지만 시는 한 편씩 마음에 새기는 독서라 버스 놓치는 일도 없습니다. 학교 벤치는 점심시간 뒤에 책을 보며 소화시킬 수 있어 좋습니다. 학동 광주 천변의 사각 정자도 좋아요. 흐르는 물살과 혼자 노는 해오라기도 보고 나무도 무성해서 가을에는 낙엽으로 폭신합니다. 네 벽에 긴 의자는 책 보다 누울 수도 있고 눈이 피로해지면 무등산을 보면 됩니다. 그러나 화장실만큼 책 보기 좋은 장소는 없어요. 일 보며 읽는 책은 머리에 쏙쏙 박힌답니다. 중요한 건 책을 읽는 그 곳이 바로 책 읽기 좋은 장소라는 것입니다

항상 제가 느끼는 거지만, 광주에 한옥 도서관이 생기면 좋겠어요.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한옥 도서관은 순천한옥글방을 비롯해 몇 개 없다고 해요. 한옥 도서관은 잊혀지고 전통 집도 보고, 옛 선비들처럼 앉아 책도 읽을 수 있습니다. 광주에도 그런 도서관이 생기면 시간 날 때마다 찾아갈 거예요. 마당에는 감나무나 느티나무를 심고 평상도 만들고 담장 따라 우리 꽃과 나무를 심으면 도서관 분위기가 더 밝아질 거예요. 정자도 만들어서 맑은 날이나 비오는 날 바람소리, 빗소리를 들으며 자연과 함께 책을 읽고 싶어요. 한옥은 나무로 만들기 때문에 냄새도 좋고 책을 보관하는 데도 좋아요. 우리 전통도 지키고 배우며, 자연도 즐기고, 책도 읽으면 일석삼조인 한옥 도서관이 꼭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쉴 새 없이 삽니다. 그 모습이 기계처럼 똑같고 메말라 있습니다. ‘자는 시간도 아까운데 책 볼 시간이 어디 있담?’하고 책을 멀리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생각을 바꿔보는 게 어떨까요. 좋은 책을 만나면 좋은 친구와 둘만이 만나는 것처럼 기다려지고 설레고 수다스러워지고 진지해지고 슬퍼지고 기뻐집니다. 단짝은 반이 달라도 늘 붙어다니는 것처럼 책도 그럴 수 있어요. 버스나 지하철 벤치에서 책 읽는 사람이 가장 눈에 띕니다. 그 모습이 가장 멋있어 보이거든요. 짬짬이 읽는 책으로 마음의 키를 쑥쑥 키우면 좋겠습니다.

박한얼 학생은 현재 호남 삼육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다. 2011년 1월 소설을 출간하였으며 보훈문예작품공모전 최우수상, 양성평등 글짓기 대회 최우수상 등 글짓기 부분에서 우수한 실력을 가진 꿈과 호기심이 많은 소녀 소설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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