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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중 _ 여행바우처 도우미
광주문화재단이 기획한 “다문화 가정 교과서 역사 기행” 에 도우미로 참여하게 되었다. 장소는 경주. 한때 우리나라 고등학교 수학여행의 단골지로 강하게 기억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가 1박 2일동안 섬겨야 할 사람들. 그들은 비록 한국에서 태어나진 않았지만 한국을 택해 가정을 꾸렸고, 우리와 함께 숨쉬고 살아가는 다문화 가정의 소중한 사람들이다. 이런 특별한 사람들과 함께 우리문화를 통한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것은 그들을 우리 속으로 더욱 더 보듬는 일임에 틀림이 없다. 시대의 현실적 문제라면 그 속에서 부대끼고 함께 고민하면서 같이 할 답을 찾는 것도 방법이라 생각해 이 여행길에 동행하게 되었다.
아침 8시, 아직은 어색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눈 뒤 우리 버스는 출발하여 12시가 되서 경주에 도착했다. 참 멀기는 멀다. 숨 가쁘게 달려 온 차에서 내렸을 땐 벌써 점심시간이다. 비록 경주의 맛을 느끼기에는 어려운 점심이었지만 시장을 반찬 삼아 두 그릇을 후딱 해치웠다.
우리 팀이 처음 간 곳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한번쯤 사진을 찍어본 그곳, 불국사였다. 말이 필요 없는 곳이다. 국가적 대사역을 통해 또 다른 불국토, 부처님의 나라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다보탑, 석가탑만으로 기억되었던 불국사는 김대성이란 재상의 전생과 현생의 부모 이야기, 또 각각의 건물 영역마다 존재하는 부처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더 매력적인 곳으로 변했다. 또 개인적으로는 극락전의 금 돼지로부터 기운을 받아서 최치원 같은 좋은 아이를 얻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그리고 갔던 분황사. 국보 30호로 지정되어있는 분황사 석탑은 그 역사와 웅장함이 가슴을 울렸다. 다음은 경주박물관. 신라 천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 워낙 크다보니 제한된 시간 안에 그 많은 것을 보진 못했지만 성덕대왕 신종과 안압지관을 중심으로 보았다. 특히 성덕대왕 신종. 에밀레종이라고 불리는 그것은 사실 일제 강점기시대에 갑자기 등장한 것으로 친일의 냄새가 난다고 한다. 종을 거는 고리는 종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휘어져버렸는지 밑에 통나무를 받쳤다. 천년이 넘는 과거에 만든 고리를 현대에는 못 만들어서일까? 하지만 역시 종의 표면에 보이는 비천상은 가히 예술이라 할 정도로 황홀하고, 그리고 아름다웠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한 그 때, 동양 최초의 천문대라고 말하는 첨성대가 우리를 반겼다. 첨성대는 1년 12달과 24절기가 그 층수에 담기었다고 한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첨성대의 벽돌은 총 362개로 음력 날수를 뜻한다고 한다.
가족과 함께 하는 여행이라서 인지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아쉽게 반월을 오르지 못해 석빙고를 보지 못하고 우리는 ‘최 부자집’으로 향했다. 이곳 역시 폐문시간이 있어 그곳의 이야기를 문 앞에서 들을 수 있었다. 비록 밖에서 보긴 했지만 그곳은 정말 말 그대로 부자 집이었다. 여성을 배려한 안채의 가림막이나 곡식을 저장했다는 창고까지,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배만 불리지 않았던 진정한 가진 자의 삶을 살았던 그들, 9대 만석의 꿈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과 학교를 세우면서 모두 사회에 환원해 버렸다. 그들의 마음이 이 시대까지 전달되지 못하는 것에 안타까워하며 발을 돌렸다.
우리는 골목 밥집에서 저녁을 먹은 후 경주의 밤을 빛내는 안압지로 향했다. 통일된 신라는 자신들의 국력을 자랑하고 다양한 국가 행사나 사신 접대 등의 목적으로 동궁 전에 월지를 만들어 진귀한 새와 짐승을 풀어 놓고 즐겼다고 한다. 이 일대에서 16면체 주사위, 배 등 당시의 생활을 알 수 있는 많은 발굴품이 나왔다고 한다. 아직 복원은 다 이루어지지 않아 잔디밭이 넓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많은 건물이 있었던 궁궐의 일부였다고 한다. 실제로 본 안압지의 전경은 생각보다 더욱 따뜻하면서도 밤과 어우러져 아름다웠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오늘 보았던 많은 것을 떠올리면서, 내일 볼 경주의 또 다른 것들에 두근거리며 잠을 청했다.
이튿날 아침, 졸린 눈을 비비며 어머니 손에 이끌려 나오는 아이들을 달래면서 우리는 문무왕릉으로 향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돌아 간 곳은 탁 트인 동해였다. 어제 비가 온 탓인지 파도가 높긴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참 좋아한다. 이곳은 독특한 무덤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 죽어서 동해의 용이 되어 신라를 괴롭히는 무리를 제압하겠다고 해서 화장한 것을 묻은 수중릉이다. 그런 문무왕이 나라를 지키겠다는 마음에 진국사를 짓기 시작하였으나 그 완성을 보지 못하게 되고 아들이 마무리를 하여 효심 깊은 이름, 감은사로 바꿨다.
감은사 터에는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두 개의 탑, 감은사지 삼층석탑이 당당하게 서 있었다. 또한 동해의 용이 된 왕이 밤이 되면 절에 들어와 쉴 수 있도록 출입구가 만들어져 있고 건물 바닥은 다른 건물과 달리 공간이 만들어져 있어, 그 아들이 얼마나 고심하면서 지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를 옮겨 경주 세계문화 엑스포에 들어가 이곳저곳 관람한 후 광주의 놀이패 신명의 공연을 보았다. 무엇보다 황룡사 9층 목탑 음각 조형물을 보면서 목탑이 온전히 보존되었더라면 정말 우리나라 역사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점심식사 장소는 어제와는 달리 경주다운 맛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비록 백반이었지만 반찬들이 토속적이고 무엇보다 맛의 고장 전남의 음식과 견줄 정도여서 나도 평소보다 많은 밥을 먹게 되었다. 다문화 가정의 어머님들이 우리나라 음식에 익숙치 않으실까봐 걱정이었지만 다들 맛나게 드시는 걸 보면서 내 생각이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간 곳은 대릉원이다. 그곳은 작은 구릉 같은 무덤들이 만든 도심 속의 공원이었다. 김 씨로는 처음으로 왕위에 오른 ‘미추 왕릉’의 큰 무덤에서 대릉원이 유래했다고 한다. 소나무 숲길을 아이들과 같이 걸으며 우리는 천마총으로 향했다. 거기에서 우리는 국사 책뿐만 아니라 시험에도 등장하는 천마도를 볼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우리는 경주를 떠나 다시 광주로 향했다. 이번 여행에 함께했던 가족들은 일본, 중국, 몽고, 베트남, 캄보디아가 고향이다. 그 분들에게 이 여행이 우리나라에 대해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1박 2일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뿐만 아니라 이 여행을 계기로 또 다른 역사여행을 통해 그분들이 더욱 많은 부분을 알아가길 소원한다. 그렇게 된다면 두 나라의 역사를 이해하는 그분들이야 말로 우리에게 정말 없어서는 안 될 귀한 한국인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어렸을 때 친구들과 놀기 위해 떠났던 경주 여행과는 달리 성인이 되어 다시 들른 경주는 1박 2일로는 부족한 보물창고였다. 유물 하나하나에 담긴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본 경주는 그 자체로 엄청난 역사였다. 비록 도우미로 참여했지만 정말 많은 부분을 얻고 돌아간 여행이였다.
이런 귀한 기회를 주신 문화재단 관계자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