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하면 할수록 다른 장르와의 경계 희미해져
‘더불어 함께’ 배우고 가르칠 수 있는 문화 환경을
중앙 무대 동경보다 남들이 부러워 할 광주판 짜야
스스로 무대를 즐기는 것을 넘어 이제는 그 즐거움을 가르치는 것에서 큰 기쁨을 느낀다. 각자의 분야에서 큰 키와 뚱뚱한 몸매라는 불리한 신체조건을 실력으로 극복했고 무엇보다도 광주를 더 즐거운 문화판으로 만들고 싶은 꿈이 참 많이 닮은 두 사람, 한국무용가 공진희 씨와 연극인 추말숙 씨가 젊은 예술인들의 땀냄새가 밴 조선대학교 무용연습실에서 만났다.
추말숙(이하 추)=공진희 선생님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공진희(이하 공)=나도 마찬가지. 추선생님 남편인 장호준 선생님이 시립국극단에 계시지 않는가. 나도 시립국극단에 7년 있었기에 잘 알고 있다.
추=바깥 양반 얘기는 모르는 걸로 하자.(웃음) 우리들 이야기를 나눠보자.
공=무용도 하나의 마임이고 연극이다. 개인적으로 안무에 관심이 있어 뮤지컬 안무와 배비장전, 광주 연극제 작품의 안무도 했었다.
추= 맞다. 연극에도 안무가 필요하다. 특히 연극에서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런데 전통 무용하는 분들 중에는 다른 장르에 접목하거나 새롭게 창작하는 것을 전통이 무너지는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더라. 그런데 안무를 하셨다니 존경스럽다.
공= 예술은 한길만 파야 한다고들 하는데 하다 보니 뭔가 조금씩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연극도, 재즈댄스도 해보았다. 무용에도 플러스알파가 붙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자체로 완전한 예술은 없는 것 같다.
추= 나 같은 경우는 프리랜서라서 일 년에 한 작품 정도만 한다. 가벼운 무대만 서다가 작년 올해 전국 연극제에 서게 되었는데 정말 떨렸다. 작년에 1초 정도 무대에서 대사가 생각이 안 난 적이 있어 참 절망스러웠다. 내가 이렇게밖에 안 되는가, 무대에서 만큼은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이라 그런 것 같다.
공= 20대에는 무대에 서면 연애하는 것처럼 설레고 예뻐 보이고 싶고 그랬다. 지금은 책임감이 더 든다. 예전에는 공연하라고 하면 '그래' 하고 갔는데 지금은 작은 무대라도 연습을 하고 또 한다. 지난해 전국무용제에서 ‘세번째 벽’이라는 작품을 준비하면서 몸이나 마음으로 많이 앓고 참 힘들었다. 은상을 받았는데 상이 좋아서라기보다 ‘내가 이걸 끝냈구나’하는 감사와 허탈함과 그 동안의 고생 등 여러 감정이 뒤섞여 하루 종일 펑펑 울었다.
추= 신나서 갈 수 있는 나이나 무대는 한정되어 있는 것 같다. 그 다음부터는 책임감이 따른다. 내가 최선을 다했을까, 관객들에게 모두 보여줬을까.
공= 고민하고 올라간 무대는 잘하는데, 급하게 올라가게 되면 어느 순간 기계가 된 느낌이 든다. 사람들이 보고나서 “아, 예쁘다” 말고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되길 원해서 이제는 공연에 더 조심스러워진다.
추= 남편도 예술하는 사람이다. 살아보니 서로 좀 이기적이 되는 면이 있다. 한 명이 일을 하면 한명은 아이들을 봐야 한다. 젊었을 때는 그게 유지가 되었는데 나이드니 남편이 양보를 잘 안한다.(웃음) 그래서 일을 줄이는 방향으로 갔다. 서로 일에는 터치 안 하고. 집은 먹고 잠자는 장소로만 쓴다. 항상 갈등이 된다. 내가 엄마로서 부인으로서 부족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 외의 부분으로 채워주려고 노력한다. 아이들을 어딜 데려간다든가.
공= 작년 11월에 결혼해서 아직 신혼이다. 무용에 묻혀 살다보니 결혼을 좀 늦게 한 편이다. 예술 하는 사람들은 결혼에 대해 아주 긍정적이거나 아주 부정적인 것 같다. 작년에 남편을 만났을 때 같이 공연 보러 가거나 하는 게 좋았다. 전국 무용제 준비할 때는 만나자고 해도 만나지 못했다. 공연 첫날 친구들과 함께 와서 작품을 보더니 바쁠 만 했다고, 정말 좋았다고 인정해 주었다. 그런데 앞으로 듀엣만은 안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웃음) 아직은 신혼이라 홀가분하지만 예술을 하면서 결혼생활을 한다는 건 배우자의 많은 이해가 필요한 일인 것 같다.
추= 솔직히 광주는 너무 미술에 치중해 있다. 물론 미술인들이 많아 그렇다는 건 이해하는데 몸으로 예술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도 더 많은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 공 선생님 같이 22년 넘은 무용가도 개인 작업실 없이 학교 연습실로 와야 연습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공연하려면 빚도 많이 지고. 연습할 데 없어서 야외나 작은 집 같은데서 하기도 한다. 문화예술회관 같은 공적인 장소를 개방해서 연습을 할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
공= 그런 의미에서 보면 광주문화예술회관 같은 공공기관은 턱이 무척 높다.
추= 예술장르가 비슷한 비중으로 취급받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중되어 있다. 몸으로 뛰어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로서는 작업실이 정말로 중요하니까, 또 개인이 아니라 공동작업이기 때문에 넓은 장소가 필요하다. 대인시장도 기웃거려 봤지만 정말 미술만 가능하더라. 여기처럼 마룻바닥, 거울 있는 데만 보면, 너무 좋아서 미칠 것 같다.(웃음)
공= 무용이나 연극이 인정을 못 받아서 그런가, 생각해보면 그것도 아니다. 광주 무용은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최고 수준이다. 전국무용제 최다 수상지이지만 예산지원은 일반 시도가 3,000만원이면 광주는 1300~1500만원, 절반 수준이다. 그 정도로 공연을 한다는 건 정말 기적 같다.
추= 방법은 있지 않을까? 광주문화재단의 예술지원도 단체 작업하는 사람들에게 좀더 지원을 해줬으면 한다.
공= 나도 이번에 300만원을 지원 받았다. 그런데 극장 대관료가 200만원이다. 그래서 다른 지원받는 사람들과 같이 대관해서 가령 1시간이면 30분씩 나눠서 공연하는 식으로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 유스퀘어 앞 광장 같이 오픈된 곳은 또 안 된다고 하니 좀 답답하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곳이 어디든. 광주 사람들은 한번 좋다고 생각하면 또 그 공연을 보러올 만큼 문화적 소양이 높다. 그래서 광장 같은 곳에서 지나가면서 보게 하고 싶다.
추= 사실 몇 백 받아도 우리 같이 공동작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밥값 정도 밖에 안 된다. 분장, 의상, 음악, 조명 그런 게 다 돈이다.
공= 문화예술회관 대관료를 할인해준다든지 하는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다. 아시아문화전당이 빨리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예술인들을 행정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그들의 고충을 알아주는 게 진정한 지원 아닐까. 돈 몇 백 만 원 지원보다는, 그런 게 더 큰 도움이 된다. 연습실 같은 공간을 여러 팀들이 돌아가며 쓰게 해준다든가, 대관료를 할인해 준다든가.
추= 예술만 해서는 못 먹고 사니까 나는 예술 강사도 하고 있다. 2003년부터 시작해서 올해로 8년째다. 아이들, 어르신들 가르치는 게 좋다. 사람들이 스스로를 발견하게 도와주는 것이 좋다. 시민 문화 향수 쪽으로 더 장기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연극은 급이 없지만 무용이나 음악 장르는 급이 나뉜다. 그런데 올해만 배우고 내년에 지원이 끊기면 배우던 학생들이 어디로 가겠나. 예술은 장기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3년짜리 프로젝트를 한다든지, 악기 하나를 배우게 한다든지 해서 남 앞에 보여주고 예술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줬으면 싶다. 제발 장기적으로, 한번 맛만 보고 가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공= 무용을 전공한 내가 유아교육에 새롭게 관심을 가진 것도 그런 부분 때문이다. 예술교육은 정말 중요하고 또 힘이 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무대에 작품을 올리는 것도 좋지만 그 과정에 대해 알고 있는 내가 알려 주면 다음 사람은 고생을 덜하게 된다. 만들어가는 과정도 교육이다. 오늘하고 내일이 달라지는 것이 서로에게 하나의 공연 같다. 애들에게 내가 배우기도 하고, 무대에 서면서 관객에게 배울 때도 있다. 교육 자체가 하나의 공연이구나 싶기도 하다. 무용은 나 하나만을 위한 거라면 안무는 좀더 교육적인 듯 하다. 같이 땀 흘리고 배우니까.
추= 어머니의 마음일까. 가르쳐보면 내가 하는 일도 더 잘 보이게 된다. 공선생님이나 나나 같이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네. 여자들은 같이 살고 같이 공감하는 것에 익숙하고 그런 모습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영화 하모니를 보면서 울지 않았을까? 혼자만 가지 않고 같이 가려는 모습, 나도 그러고 싶다.
추= 프로무대 선 지 20여 년이다. 여러 일이 있었지만 조금 일찍 좋은 상도 받고 해서 무대에 안 선 동안에도 무대에 대한 아쉬움이 없었다. 작년 올해 전국연극제 서면서 느낀 것은, 우리 애들이 엄마의 공연을 좋아하고 자랑스러워 하더라. 어렸을 때 아이들을 일하는 곳에 데리고 다녔는데 그 기억이 있나보다. 연극하는 언니 오빠들 보고 무대 한귀퉁이에서 자고 그런 기억 말이다. 작년 공연 한 시간 전에 아들이 그네에서 떨어져서 다리를 다쳤다. 딸이 “제가 알아서 할게요. 엄마는 공연에 집중하세요.” 라는 문자를 했더라. 감동받고 슬펐다. 딸이 동생을 데리고 깁스를 해서 유스퀘어 공연장까지 왔다. 공연 마지막쯤에 우는 씬이 있었는데, 정말 북받치게 펑펑 울었다. 관객들은 왜 저렇게까지 우나 했을 거다.(웃음)
공= 어렸을 때, 디스코가 유행하던 시대인데 어른들이 춤 한번 춰봐라 하면 나는 한국 무용을 흉내냈다고 한다. 피아노 학원, 무슨 학원 다 보내도 신통치 않았는데 무용학원은 먼 길을 혼자서 버스 타고 열심히 왔다 갔다 하더란다. 그렇게 운명처럼 무용을 시작했다. 취미도 특기도 무용밖에 없이 살았는데, 동료들에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았다. 나 스스로 치유하기 힘들 정도였는데 그 단계를 넘어서고 어느 순간 화가 나면 무용을 하는 나를 발견했다. 음악을 틀고 살풀이를 추더라. 또 무대에 서면서 한 두 명라도 관객들이 웃어주고 밝은 모습을 보면 내가 무용하길 잘했구나 한다.
추= 어떤 분이 “당신에게 연극이란 무엇이오?” 묻길래 “숨 같고 나의 전부다” 했더니 “어렸을 때 열등의식이 많았군요” 농담을 하시더라. 사실 어렸을 때 열등감 없는 사람이 어딨나. 나도 그랬다. 하지만 지금 연극을 하면서, 가르치면서, 다른 이에게 연극을 알게 만드는 일이 자랑스럽다. 다른 건 못한다. 살림도 엉망이고. 성격도 안 좋다.(웃음) 강사하면서 남들을 토닥토닥 하면서 성격이 바뀌었다. 예술가로서 나를 되돌아 보게 되는 것 같다. 공선생님은 대단하다. 어렸을 때부터 운명처럼 자기 길을 찾았다니.
공=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유일하게 그것만 했던 거지.(웃음) 다른 건 하도 못해서 막판에 어머니가 그거라도 해봐라 해서 시작했던 거니까. 지금도 형제들이 그런다. 어렸을 때 쟤는 할 줄 아는 게 아무 것도 없었는데 지금은 우리보다 쟤가 성공했다고.(웃음) 지금도 남들보다 더디다. 천재적인 것도 없고. 그저 죽어라 연습했다. 테이프를 자면서도 틀어놓고 그랬다. 자는 사이에 혹시 내 세포가 그 음악을 익혀주지 않을까 해서.
추= 정말 대단하다. 공선생님은 한국무용하기에는 큰 키인 듯하다. 나는 연극하기에는 너무 뚱뚱하다. 처녀 적부터 아주머니 역할을 했다. 아름다운 배역을 해본 적이 없다. 정말 개성있는 캐릭터인데 말이다.(웃음)
공= 무용하기에 큰 키 맞다. 시립국극단에 있을 때도 옷이 안 맞아서 내 옷은 따로 맞춰 입었다. 키가 커서 소품을 들거나 한량무 추는 남자, 이도령, 그런 것만 시키더라.(웃음) 무용단에서 나올 때쯤에 부채춤 센터를 했다.
추= 오~ 같이 하는 걸 좋아한다는 것 말고도 같은 점이 또 있었네. 신체적인 콤플렉스 때문에 원하지 않는 배역을 하고 이런 것들 말이다. 예술은 ‘추의 미학’도 있는데 사람들은 추의 미학을 너무 멀리하는 듯하다. 광주에서 추의 미학을 예술적인 관점으로 갖고 있는 연출가를 아직은 못 만났다.
추= 그래도 나는 광주가 참 좋다. 다들 서울로, 대학로로 가려고 하는 건 정말 안타깝다. 지역에 남아서 안정되게 예술을 할 수 있다면 광주가 더 좋은 곳이 될 텐데. 그런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런 분들 보면 존경스럽다.
공= 광주는 특별한 문화의 도시다. 항상 압박 받고 핍박 받는데, 밖에서 보면 가진 것 없이도 즐거워하는 것처럼 보일 거다. 광주 사람들은 타고난 광대의 기질과 예술적인 눈이 있는 것 같다. 전국에서 공연을 해보면 광주 관객들이 무대 보는 눈과 귀가 가장 예민하고, 고정고객들이 있어서 정확한 비판을 해준다. 그래서 내가 여기서 뭘 할 수 있을까, 더 고민해본다. ‘몇 십 년 무용해서 광주에만 박혀있는’ 게 아니라 ‘몇 십 년 무용해서 광주에서 꽃피우는’ 것. 그런 삶을 살고 싶다. 문화예술이 서울 지향으로 가는 것이 참 안타깝다. 다른 곳에서는 흉내낼 수 없는 전라도 김치처럼, 남들이 부러워 할 우리들만의 재미있는 판을 벌일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추= 올해 문화예술교육활성화지원사업에 선정돼서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과 함께 자기 책상을 만드는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같이 하는 사람들이 문화예술교육을 잘 할 수 있는 강사로 자신의 노하우를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 올해 전국 연극제에서 극단 터의 ‘막차 타고 노을 보다’가 광주에서 일등을 하고 극작상도 받아서 6월 13일 광주 대표로 공연을 한다. 그 공연을 잘 마쳤으면 좋겠다. 내 목표는 어떤 일을 하든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 무슨 일이 생기면 내 옆에 올 수 있는 사람이 1000명이라면 올해는 2000명으로…. 그렇게 광주에서 복작복작 예술하고 교육하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잘 해보고 싶다.
공= 박사 논문을 4년째 못쓰고 있다. 작년엔 전국무용제 때문에 밀리고, 올해는 꼭 쓰려고 한다. 무용을 전공으로 하고 유아교육으로 석박사 한 사람은 전국에서 처음이라고 한다. 그 일을 잘 마무리 하고 싶다. 내년에는 작년 전국무용제에서 은상을 받았던 ‘세번째 벽’을 광주 시민들에게 상설공연으로 보여드리려고 한다.
추= 나도 논문 3년째 못쓰고 있는데... 그것까지 닮았다. (웃음) 광주에서 재미있는 판을 계속 벌어나갔으면 좋겠다. 기회가 되면 공선생님과도 같이 해보면 정말 좋을 것 같다.
공= 나도 그러고 싶다. ‘같이’하면 좋은 거니까. (웃음)
공진희는 일곱 살부터 한국무용을 시작해 시립국극단원을 지냈고 김미숙뿌리무용단 지도위원이자 太한국무용단 단장을 맡고 있다. 조대 무용과 석사를 거쳐, 전남대에서 유아교육으로 석․박사를 밟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추말숙은 조선대 재학시절 ‘탈패’ 활동을 하다 4학년때 놀이패 ‘신명’에 들어가 17년간 활동했다. 현재는 프리랜서 연극인이자 열정적인 예술강사로서 아이들, 어르신들과 함께 나를 표현하는 즐거움에 푹 빠져 살고 있다.
마이클잭슨과 마릴린몬로. 이이남 작가의 작업실은 화장실표지판도 예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