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를 말해봐

조금 특별한 국어교사였고 지금은 대안교육기관 금란교실 실장을 맡고 있는 정진규 선생님과 담양중에서 미술로 아이들과 대화하는 정미랑 선생님이 만났다. 만나자마자 아이들 이야기를 쏟아놓는 천상 교사인 두 사람이 나눈  ‘아이들과 함께 행복해지는 문화예술교육’ 이야기.

어른들 잣대 변할 뿐 아이들은 ‘문제’ 없어

정진규(이하 진규) = 요즘 아이들 참 바쁘다. 공부 말고도 게임, 드라마, 싸이월드, 스마트폰...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유머, 유행 코드도 알아야 하고 잘 놀기까지 해야 한다. 바쁘고 할 일이 많으니 애들이 항상 지쳐 있고 말이나 행동이 급하고 충동적이다. 그러면서도 자기 살길은 자기가 찾아야 한다는 위기의식도 있다. 그래서 배타적이 되거나, 반대로 튀어서 인정 받으려는 경향이 있다. 튀는 문화,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소비문화가 아주 강하게 나타난다. 그 사이에서 주눅 든 아이, 튀는 아이, 방관하는 아이, 세 그룹으로 크게 나눠진다.

정미랑(이하 미랑) = 어른들의 잣대와 요구가 아이들에게서 놀이를 박탈해 버렸다. 초등학생 때만 해도 아이들이 부모나 교사에게 순응하지만 중학교에 오면 스스로 컸다고 생각하고 대입에 대한 부담도 고등학생보다 적기 때문에 아주 자유로운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흔히 중학생들을 가장 다루기 어렵다고들 하는데, 그건 10대들의 아주 정상적인 모습이다. 그 정상적인 모습을 우리는 품지 못한다. 어른들의 시선에서는 일탈이고, 문제행동이니까. 요즘 부모님들은 본인이 생각하는 목표치에 도달시키기 위한 조건들을 제시하면서 ‘내가 너한테 못 해 준 게 뭔데’라고 다그치지만, 실은 아이들은 ‘사랑의 결핍’을 예민하게 느낀다. 아이들이 부모나 주변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건 ‘제발 나 좀 봐줘요. 사랑해줘요.’라는 표현이다. 그게 통하지 않으면 점점 강도를 높인다.

진규 = 그래서  ‘어떻게 아이들과 만날 것인가’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문제가 된다.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학교를 탈출하면 ‘네 미래가 걱정되니까 부모인 내가 도와주겠다’라고 하지만, 정작 본인을 되돌아보거나 아이들의 말을 듣는 데는 인색하다. 부모는 어느 누구도 내 자식이 망가지기를 원하지 않지만 동시에 요즘 아이들의 꿈이 우리 때와 다르다는 것도 인정하지 못한다. 요즘 아이들은 자기 신화를 꿈꾼다. 환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낙천적이다. 지금 이순간 행복하고 재밌게 보내자는 생각을 한다.

미랑 = IMF즈음을 포함해 전남 섬학교에서 10년 이상 근무했다. 그 당시 제 일순위로 둔 게 ‘부모 역할을 하자’였다. 결손 가정이 많았고 흔들리는 아이들도 많았다. 그래서 아이들을 품어주고 제대로 된 부모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잡아 주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 균형을 유지하고 아이들을 제대로 볼 줄 아는 눈이 필요했다. 그래서 미술과 접목된 상담공부를 했다. 얼마만큼의 교사여야 하는지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고 느꼈다. 어른이 노력하고 지지해주지 않으면 아이들과 가까워질 수 없다. 

아이들의 행복한 변화, 문화 예술은 주변 즐기는 것

진규 = 아이들과 함께 한 문화와 예술로 행복했던 경험이 참 많다. 89년 전교조 가입으로 해직돼 95년 대촌중으로 복직했다. 애들이 착하지만 너무 무기력해 보여 광산가락 인간문화재를 모셔서 함께 배웠다. 농악 자체보다 아이들이 동아리를 통해 함께 몸을 부딪치면서 변해가는 과정을 보았다. 선후배, 공동체 안에서 교류하고 배우면서 아이들이 크더라. 악기를 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모심는 논에서 경로잔치에서 듣는 동네 어른들의 칭찬이 아이들을 크게 하더라. 자기 몸으로 경험하는 예술적 행위가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준다는 걸 알았다. 문화예술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 가까운 것을 즐기는 것이란 걸 느꼈다.

미랑 = 교과서 밖 수업, 일상과 예술이 함께 하는 수업을 꿈꾼다.

진규 = 나도 국어 교과를 재구성 했다. 시, 콩트, 소설, 다른 친구들의 글로 수업을 하는 거다. 기존의 작품을 공부하는 건 마치 명작을 베끼는 것과 비슷하다. 또래 이야기, 내 이야기가 없으니까 애들이 재미를 못 느낀다. 늘 아름다움과 사람에 대해 문학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한다.

미랑 = 맞다. 틀에 가둬 놓으면 애들은 표현하는 게 고역이 된다. 난 국어선생님과 콜라보 하는 걸 꿈꾼다. 나는 회화적인 것 보다 글로 표현을 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다. 애들은 쓰면서 생각한다.

진규 = 글보다 먼저 말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스마트폰 하면 떠오르는 것? 앞에 놈이 말하는 것에 대한 징검다리 말놀이를 하는 거다. 말과 글을 같이해서. 여럿의 힘을 빌어서.

미랑 = 난 주제를 먼저 주고 미술적으로 표현해 보라고 한다. 그리고 꼭 제목과 설명을 쓰게 한다. 제목을 지으면서 설명을 쓰면서 자기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생각하고 느끼고 표현할 줄 아는 거. 그것이 미술이다. 단순히 그리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남에게 이해시켰다는 성취감도 생긴다. 

진규 = 2005년 즈음 공교육에 대한 회의가 많이 들 때, 계절마다 야영 다니고 야외수업을 했다. 애들이 마음껏 놀다가 단 한마디라도 쓸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느낌을 담아서. 내가 좋아하는 색, 나를 사로잡았던 풍경, 쓰고 싶은 글을 맘껏 쓰라고 했다. 그 연습을 자꾸 시켰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자기를 믿어주는 걸 안다.

미랑 = 맞다, 애들은 정직하다. 선생님이 얼마나 자기들을 사랑하는지 안다. 섬에 있을 땐 맨발로 운동장에서 잔디밭까지 밟고 들어와서 그림으로 표현하기, 돌멩이나 나뭇잎으로 나를 표현하기, 정말 재미있는 수업을 많이 했다.

진규 = 언젠가 애들과 낙엽 시 전시회를 한 적이 있다. 주변에 있는 낙엽을 주워서 거기에 시를 썼다. 가까이 있는 것에 의미를 두면 그게 작품이고 예술이다. 삭막한 도시 속에서도 행복한 것들이 많다는 걸 찾게 해주고 싶어서 ‘꿈노트’를 쓰게 했다. 내가 좋았고 행복했던 것, 기억할 만한 순간 등등. 남자애들은 그런 걸 잘 쓸 줄 몰라서 가장 행복했던 음식, 뭐 이런 것도 적게 했더니 한 줄, 두 줄, 자기 이야기를 쓰더라. 기억을 끄집어내주는 것, 문화 예술 체험이 그렇게 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미랑 = 오늘의 현실은 아이들에게 유년의 추억을 주지 않는다.

진규 = 유년의 기억이 평생의 상상력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전 학교에서 ‘그대로 놀기’를 주제로 축제를 만들어봤다. 선생님들은 전혀 관여하지 않고 오직 아이들이 낸 아이디어로 만든 축제였다. 처음에는 선생님들도 반대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상상력은 대단했다. 각 반마다 다트방, 노래방, 만화방 등 다양한 놀이를 벌였고 선생님들도 같이 즐겼다.

문화예술교육은 생각하고 느끼고 표현하게 한다

미랑 = 교사가 조금만 풀어주고 열어주면 아이들의 상상력은 무한대로 열린다.

진규 = 교사는 아이들과 같이 성장한다. 이 시간 자체가 한편의 희곡이다. 금란교실은 학교에서 강한 징계를 받은 애들, 폭력, 금품갈치, 장기결석 등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이 5~8일 과정으로 들어온다. 사실 진짜 ‘문제아’는 없다. 단순히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는 것뿐이다. 오히려 모범생이 답답하다.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지 못하고 참고 있으니까

미랑 =  다단계식 테라피, 각종 치료법이 넘쳐나는 시대다. 이런 상황은 결국 인간을 문제적으로 본다는 건데, 자기 욕구 충족을 원한다는 면에서 사람은 다 같다. 그런 욕구가 가장 왕성 할 때가 십대들인데 그런 애들을 어른들이 만들어 논 사회적 규범에 정리 정돈 하고 몰아 부치는 게 너무 심하다. 아이들은 그냥 아이들일 뿐이다. 그들의 행동은 교사가 애들을 대하는 태도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 같다. 가르치려고 하기 보다는, 아이들 이야기를 조금만 더 들어줄 여유와 관심이 있다면 좋을 텐데. 아이들은 자기가 불편하니까, 자기가 힘드니까, 다른 사람과 사회를 힘들게 하는 거다.

진규 =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문제아는 없다. 아이들을 그렇게 보는 것은 사회나 어른들 기준의 시각이다. 그렇게 길들이고 싶어 하는 사회적 철학이다. 갈등이 있어야 그 과정에서 배우게 된다. 공감은 있지만 완벽한 일치는 불가능한 거다. 그런데 우리는 애들에게 그렇게 하길 원하고, 그게 되면 성공하는 거라고 한다. 사람은 절대 같을 수 없는데 말이다. 차이는 있어도 차별은 정말 안 된다. 인권! 그걸 학교에서 가르치고 경험시켜 줘야 한다. 나와 다른 사람을 보고 <손발이 불편한 거야, 그림을 좀 못 그리는 거지, 말을 좀 못할 수 있어.> 이렇게 있는 그대로 보는 거다. 그런데 사회는 앞에서 말한 사람들을 말한 열등, 산만, 이상한 아이로 본다. 이런 점들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배우는 것이 교육이다.

미랑 = 이 부분을 끌어내는 것이 표현활동이다. 은유적으로, 심리적으로. 은유적으로 아이들이 깨닫는다. 본인들의 문화적 표현들만이 스스로 깨달을 수 있게 해준다.

나에게 학생은 ‘창’, 서로를 성장시키는 ‘애인’

진규 = 나에게 학생은 창이다. 세상을 보는 창, 내 자신을 보는 창이다. 나는 요즘 가르치려는 생각을 안 한다. ‘나는 너희보다 좀 더 앞서간 학생’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나의 동반자라고 생각하니 맘이 편해지더라. 내가 너무 가득 차 있다면 들어올 공간이 없으니 나 자신이 70%를 채우고, 나머지 30%는 다른 사람에게 열어두는 거다. 아이들이 나에게 들어올 수 없다면 그건 일방적인 교육 아닐까? 나는 애들에게 그릇이 되고 싶다. 내 등이 아이들이 밟고 가는 징검다리가 되면 좋겠다. 그런데 지금도 부족하고 쉽지 않다.

미랑 = 난 ‘학생’이란 단어를 공문을 작성할 때만 사용한다. 아이들이라고 표현한다. 난 애들을 ‘애인’이라고 생각한다. 애들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외모도 꾸미고 더 좋은 수업기술도 배우면서 노력하는 것 같다. 서로를 성장시키는 게 진정한 애인이 아닐까?

진규 = 가르치려는 것을 조금만 포기하면 아이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 선생님들은 가르치려는 목적으로 아이들을 본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보면 그것만 보인다. 있는 그대로 보면 아이들이 보인다.

미랑 = 나이를 초월해서 가질 수 있는 인간적 관계, 그건 교사만의 특권인 것 같다.

문화재단, 학교-지역-문화예술을 잇는 끈 돼주길

미랑 = 딸아이 학교가 광주문화예술지원센터의 미디어 강사 파견학교로 선정돼서 딸이 정말 재미있게 미디어 수업을 받는 걸 봤다. 더 많은 학교들이 이런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에 행정적인 부분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이러한 교육은 제한적이다. 예술 활동을 하거나 그쪽 분야에 일하는 사람들만 아는 ‘마니아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 문화예술교육센터가 다양한 도움을 주고 있지만 그 도움이 동아리식으로 끝나지 않도록 일반 교사들에게도 폭넓은 정보와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다. 문화예술은 이론적으로 가르칠 수 없는 것을 가르치는 강한 힘이 있다. 씨 뿌리고 가꿀 수 있는 정책이 있어야 한다. 문화의 나무를 키우는 농부가 되겠습니다. 라는 재단의 말처럼.

진규 = 역사가 기록되고 남겨지는 것 자체가 문화의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역사가 공간속에 남아 있어야 한다. 학교 역사관을 만들면 어떨까? 배움과 역사가 함께 공존하는 공간이 되는 거다. 일학년은 일학년 층에, 이학년은 이학년 층에. 아이들의 노는 공간에 그러한 공간이 있다면 좋겠다. 일상이 축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문화재단이 지역과 학교, 학부모, 문화예술인을 서로 연결시켜 주었으면 좋겠다. 예를 들면 학부모가 문화를 갖고 학교에 들어갈 수도 있고 벽화작업을 같이 하거나 동네 지도를 만들 수도 있다. 문화예술인들이 1대 1로 학교에 들어와 문화예술컨설팅을 하거나 수업이나 다양한 형태로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다. 이런 게 문화나눔 운동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미랑 = 오늘 선생님을 처음 뵈었는데, 생각이 비슷해서인지 정말 정신없이 이야기한 것 같다. 그런데도 아직 할 이야기가 많다.(웃음)

진규 = 같은 마음이었다.(웃음) 나도 새갈래(새로운 문화예술교육을 갈망하는 네트워크) 모임 등 문화예술교육센터 프로그램들에서 만난 동료교사들과의 교류가 큰 힘이 됐었다. 오늘 같은 좋은 만남이 또 있었으면 좋겠다.

정진규는 아이들이 나, 너 세상과 소통하도록 돕고 싶다. 학교와 어른을 거부하는 아이들 마음을 여느라 매일 녹초가 되지만, 또 아이들 때문에 힘이 난다. 아이들이 스스로 살아있 다는 걸깨닫게하고 꿈찾기에동반자가될수 있는교사라는 직업이 참행복하다.

정미랑은 교직생활 20년, 그래서 20배 더 노력하는 미술교사다. 수업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 아 아이들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 개인적으로 미술상담을 공부했다. 지금도 수업외 상담프로 그램, 소규모 교사 연수 강연, 그녀를 필요로 하는 어디든 달려가는 열혈 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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