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리포트

정재름 _ 화가

올해는 50년 전 베를린 도시 한복판에 갑자기 콘크리트 장벽이 세워졌던 것과 통독 20주년을 회상하며 동서의 분단되었던 아픔들을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와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다. 독일이 통일된 후 베를린은 전 세계 예술가들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문화 예술 활동가들의 무대로 자리를 잡았다.

‘예술의 도시’ 베를린의 심각한 허점

예술의 도시로서의 베를린에 대한 설문 조사가 현재 진행되고 있어 많은 예술가들이 베를린을 선택하는 이유가 조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일반적으로 예술가들이 베를린을 선택한 이유는 예술가들이 많이 모여 사는 장소와 분위기, 그리고 저렴한 집세를 꼽을 수 있다. 예술가들은 도시 중심가와는 상관없이 저렴한 주거지와 작업실을 마련할 수 있는 경우 빠른 속도로 모여든다.

반면, 예술가협회의 한 인사는 베를린시가 예술의 도시 발전 계획에 예술 문화 정책의 예산을 삭감하고 있고, 예술인들에 대한 지원정책으로서 복지 분야는 아예 조항에서 제외되어 있다고 밝혔다. 통계적으로 베를린에 거주하는 예술가들의 70%가 일 년에 12,000유로로 생활하며,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실업자 수당마저 포기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실업자 수당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환경조성에 장애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도시를 대변하는 새로운 예술 환경조성을 위한 사회적, 경제적 측면의 새로운 모색이 없는 현재의 문화정책은 마치 잔뜩 부풀어 오른 풍선처럼 위태로운 상황처럼 비춰지고 있다. 베를린 예술협회 설립자는 “가진 것과 필요한 것”이라는 보고서에서 놀랄만한 사실을 전했다. 문화와 예술정책의 담당자들은 사실 예술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그 어떤 안목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베를린의 많은 예술 단체들이 예산난을 겪고 있듯이 평위원회들에게도 예술을 활성화 시킬 수 있는 지원이 절실하다.

통독 이후 도시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였는데 아직도 그 이전의 예술에 대한 계획서만이 통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예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빈 공간 활용방안 등의 예술정책과 이에 대한 대안의 재정립 등이 최근 자주 등장하는 토론의 주제들이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문화정책 담당자들이 어떻게 자발적으로 예술가들과 함께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들어 갈 수 있을지가 앞으로의 과제이기도 하다.

베를린을 전망하는 쇼 VS 예술가의 능력쇼

그 와중에 베를린 시장 클라우스 보붸라이트(Klaus Wowereit)가 기획한 ‘Based in Berlin(베를린을 본거지로)’(6월8일~7월 24일)은 베를린 예술계에 논쟁을 불러일으킨 전시라 할 수 있다. 보붸라이트 시장은 베를린을 전망하는 쇼로 이 전시를 기획하고 국제적으로 명성 있는 5명의 큐레이터들을 초대해 소수의 예술가들을 선정했다. 하지만 베를린의 문화예술정책이 안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대외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한 이상적인 공간은 함부르크 광장(Hamburger Platz)의 미술관이다. 함부르크 광장의 이 미술관에서는 같은 기간 ‘라이스퉁스샤우(Leistungsschau, 능력쇼)’(6월 10일~30일)라 명명한 또 다른 전시회가 열려 ‘Based in Berlin’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었다. ‘능력쇼’는 직업인 예술가로서 예술로 자립할 수 있다는 점을 집중 부각시키고자 기획한 전시회다. 이 제목은 애초 베를린 시장이 자신의 프로젝트에 붙인 제목이었다. 시장은 ‘능력쇼’ 오프닝에 커다란 화환을 보내왔는데, 지나치게 크게 느껴지는 꽃다발이 전시회 관람자들의 시선을 압도한다. “Alles Gute zur Leistungsschau”, Klaus Wowereit(능력쇼 전시회가 성공하기를, 클라우스 보붸라이트)”. 흰 인조 실크천 위에 빨간 글씨로 쓰여진 축하 메시지가 붉은 장미꽃 화환 위를 장식하고 있다.

부정적 현주소에 대한 신랄한 재점검

‘능력쇼(Leistungsschau)’는 베를린에 거주하는 모든 작가들을 위하여 문호를 개방하였다. 현 베를린의 예술계 실정에 대한 동참의 의미로 유명한 작가들과 무명작가들의 작품까지 모두 받아들인 것이다. 441명의 베를린 예술가들이 그들의 작품을 보내 참여하였다. 주어진 공간을 감안한 작은 규격의 작품들이 긴 미술관 벽에 촘촘히 걸렸고, 나머지의 공간에는 설치 작품들과 손으로 들 수 있을 만한 정도의 작은 조각 작품들이 배치되었다. 따라서 이 전시회는 예술의 도시 베를린의 부정적인 현주소에 대한 신랄한 재점검의 의미를 지닌다 할 수 있겠다. 전시장에는 여러 종류의 작품들이 작품 가격과 예술적 레벨의 경계가 허물어진 채 함께 뒤섞여 있다.

유치하지도 무미건조하지도 않은, 오히려 유머를 느낄 수 있고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전시회가 바로 ‘능력쇼(Leistungsschau)’이다. 이 전시회는 지금 몽비쥬팍(Monbijoupark)에서 엄청난 예산을 들여서 베를린 시가 보여주려 했던 ‘Based in Berlin(베를린을 본거지로)’ 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안전함과 무방비가 함께하듯 여기에 전시된 작품들이 서로 이웃하여 아주 가까이 걸려 있다고 베를린 신문인 ‘타게스 슈피겔(Tagesspiegel)’은 쓰고 있다.

출품작가들 중 미샤엘 오토는 새집을 얇은 빵조각으로 만들기도 했는데, 결정적인 시간, 즉 새가 그들의 영역 안에서 발밑의 빵을 쪼아 먹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이 집은 불확실한 예술가들의 생존에 대한 비유라 할 수 있다. 음향 작가인 보도 하르트비히는 베를린 장벽 이전 시대부터 중요한 교통수단이었고 분단과 통일을 함께 경험한 역사적인 전철(S-Bahn)음향을 녹음하였다. 베를린 사람들의 일상의 소리들을 대변할 수 있는 이 음향은 전시장에서 역사의 흐름을 눈으로 듣게 만든다. 현대 예술가들의 삶은 오늘 베를린에서, 내일은 어떤 다른 곳에서의 방랑자 같은 삶을 표현한 한 가방 작품도 볼 수 있다.

이 미술관은 옛 동독시절에 슈퍼마켓이었다. 이 전시장은 지난 10년 동안 미대의 조각 전공생들이 작업실로 이용했는데 새로 지어진 미대의 작업실로 이사 간 후에 줄곧 비어 있었다. 단층으로 된 긴 건물은 작년부터 미대의 두 젊은 교수가 전시관으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전시 기간에 예술과 사회, 정치와의 관계 등에 관한 강연들과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이 모든 것들이 전시 제목이 지시하는 바와 같이 예술가들의 잠재력과 능력을 함께 보여주는 성공적인 기획 전시회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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