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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진 _ 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 겸임교수/ (주)쥬스컴퍼니 예술감독
2001년 가을, 2002 광주비엔날레 축제행사 프로그래머로 처음 광주에 발을 디딘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2006년과 2008년 비엔날레와도 공연행사 및 개막연출로 다시 인연을 맺었고, 2008년 아시아문화중심도시 브랜드축제개발 및 시범사업, 2009년에는 김치문화축제의 PM으로 참여하는 등 광주의 축제들과 직간접적인 만남을 지속해오면서 10여 년 간 광주와 광주축제의 변화를 지켜보았다. 지금도 강의 때문이기도 하지만 매주 광주를 내려오지 않으면 뭔가 허전한 ‘광주 마니아’가 되어 있다.
지난 10년간 모두가 인정하듯, 광주는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광주의 문화적 삶을 풍요롭게 가꾸어 갈 ‘아시아 문화중심도시’사업은 ‘광산업’, ‘문화콘텐츠 산업’ ‘디자인 산업’등 광주의 산업지형도를 바꾸는 데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사업과 직간접적인 연관성을 갖고 여러 축제들이 생겨났으며, 앞으로도 생겨날 것이다. 격년으로 개최되는 ‘디자인 비엔날레’가 이미 ‘광주비엔날레’와 비견되는 수준으로 자리를 잡고 그 위치를 확고히 해 가고 있으며, 아직은 부침을 반복하고 있기는 하지만, ‘정율성 국제음악제’와 ‘광주 국제공연예술제’도 시작된 지 어느덧 6~7년이 지나고 있다. 구 단위 축제이기는 하지만, ‘7080 충장축제’가 문화관광축제로서 광주다운 거리축제의 면모를 보이며 새로운 축제모델을 만들어가고 있으며, ‘광주김치축제’는 ‘세계김치연구소’의 유치와 함께 비약적으로 규모를 키우고 내실을 다져 ‘광주세계김치문화축제’로 국내최대의 음식문화축제를 넘어서 글로벌 음식축제로 성장해가고 있다.
이렇듯 광주의 축제들은 지난 10년간 생성과 성장, 질곡을 반복하며 변화 발전 해오고 있다. 지난 1월 광주문화재단이 전국 문화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출범하여 광주문화의 비상을 주도하고 있으며, 2012년 예술위원회 등 정부의 문화관련 공기관들이 광주인근으로 이전하게 된다. 또, 2014년 아시아문화전당의 개관과 2015년 세계 U대회 개최 등 대규모 국제행사와 스포츠 행사들이 줄줄이 광주와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광주의 문화계는 이제 향후 10년 이내에 지난 50년간의 변화를 넘어서며 Jump-Up할 수 있는 비약적 발전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외부 환경의 긍정적 변화가 광주 문화예술계의 질적 발전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광주 문화계 전체의 각고의 노력과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광주는 비엔날레와 디자인비엔날레를 비롯해 축제의 규모면이나 수적인 측면에서 다른 광역시에 비해 뒤처지지 않는 축제들을 개최해왔다. 부산영화제를 개최하는 부산을 제외하고는 국제적인 인지도를 갖고 있는 글로벌 축제가 정례행사로 자리 잡은 곳은 광역시 중에서도 광주밖에는 없다. 축제 개최 규모와 개최 횟수에서 측면서 광주가 타 광역시에 뒤지지는 않지만, 광주는 6개 광역시 중에서 도시 브랜드 파워면에서는 가장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광주의 축제들이 광주의 도시브랜딩에 적극적인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또, 광주의 가장 중요한 시민축제인 5.18 기념행사는 지난해 30주년 행사를 대규모로 개최하였는데,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도가 가장 높은 축제이다. 하지만, 5․18 행사가 민주․평화․인권의 인류 보편적 가치를 축제의 메시지로 담고 있다 보니, 광주에 소소한 일상의 가치를 담은 작은 축제들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미약한 편이다. 5․18 기념행사 역시 5․18 정신을 계승하여 민주․인권․평화를 문화적으로 풀어내는 본격적인 문화예술축제로 승화될 수 있다면 더 많은 관심과 참여를 유도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최근 광주에서는 월드뮤직페스티벌과 정율성 음악제, 여성합창제 등 음악중심의 축제개최가 다른 장르의 축제에 비해 그 규모를 키워가고 있다. ‘미술․디자인’ 중심의 광주 비엔날레와 함께 ‘음악’ 소재의 축제가 제 자리를 찾아갈 수 있다면, 광주 예술축제의 양대 축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앞으로 광주의 문화계는 아시아문화전당의 개관과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에 맞춰 ‘아시아’와 ‘아시아문화’를 소재로 한 전당 중심의 브랜드 축제 개발과 함께, 소소한 일상의 정서를 담아내는 작은 축제들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광주에서 필요한 것은 축제의 수가 많고 적음보다 축제를 만들어가고 즐길 수 있는 주체가 존재하는가 하는 점이다. 지금 광주는 축제를 ‘즐길 수 있는’ 주체를 늘리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에 수많은 문화예술 프로젝트들이 펼쳐질 텐데 정작 그 풍성한 문화의 성찬을 향유할 수요자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얼마나 아까운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대규모 관 주도형 축제가 아닌 ‘주민주도형 소규모 마을단위 축제’의 활성화를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싶다. 직접 축제를 만들어보고, 즐겨 본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광주의 축제들이 탄탄한 체력을 확보하고 성장해갈 수 있다.
이런 광주의 급변하는 문화적 여건 속에서, 광주문화재단이 중심이 되어 광주의 축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재조명하고, 국제수준의 축제로 성장시키기 위해 브랜드 축제라는 명칭으로 여러 축제의 ‘다핵적 통합’을 모색해보는 의미 있는 실험을 시작했다. 이번 2011년 브랜드 축제 ‘Festival Oh! 광주’는 아시아문화전당의 개관과 아시아 문화중심도시 사업의 안정적 추진을 전제로 광주 축제의 질적 개선의 필요성 속에서 탄생한 축제이다. 통합의 방식으로 ‘다핵적 통합’이라는 원칙을 제시한 것은 서로 다른 소재와 목적으로 만들어진 축제가 갑자기 하나로 통합된다는 것은 상당한 진통을 초래할 수 있으며, 통합에 따른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1단계 통합 전략으로는 개별 축제의 장점들을 충분히 살려가면서 통합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의 브랜드축제 개최전략이 적절하다.
이번 7월 1일 전야제로부터 시작되는 2011년 도시브랜드 축제인 ‘페스티벌 오! 광주’는 이런 커다란 사명과 문제의식을 안고 출발했지만, 실상은 기존에 개최되던 3개 군소 예술축제의 파행적, 소극적, 답보적 운영을 개선하기 위한 방편적 대안으로 제시된 측면이 크다는 점이 브랜드 축제의 지속적 성장의 제약요소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올해의 축제를 보는 관점은 본격적인 ‘도시 브랜드 축제’를 개최하기 이전에 실험적인 축제 통합의 시도이자, 시범사업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적절하다는 판단이다. 재단 주도하에 기획된 ‘도시 브랜드 공연’인 ‘자스민 광주’와 같은 새롭고 실험적인 시도가 브랜드 축제의 의미를 살려주고 있지만, 광주광역시가 가져야 할 문화적 중량감과 광주의 문화계가 짊어지고 가야 할 한국 문화계의 기대에 부응하는 수준의 브랜드 축제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아직은 적합하지 않은 수준이며, 본격적인 브랜드 축제의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는 보다 장기적이고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광주를 아시아 축제문화의 허브로 만들기 위해서 이미 몇 년 전부터 몇몇 광주의 문화기획자들과 ‘아시아 축제 네트워크’에 대한 논의를 해왔다. 광주를 예술인들이 가장 즐겨 찾는 도시이자 오고 싶은 도시로 만들기 위해서는 아시아 예술인들이 참여하고 싶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예술축제’를 개최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다. 하지만, 광주비엔날레 급의 ‘예술축제’가 단기간에 만들어지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시아의 예술인들에게 가장 빨리 광주의 진면모를 알릴 수 있는 빅 마우스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시아 각국 예술축제의 ‘축제 감독(예술감독)’ 및 ‘축제 기획자’들이다. 이들을 전당 개관 이전에라도 예술가보다 먼저 광주로 불러들일 수 있다면, 그래서 이들이 아시아 축제에 대한 이슈를 만들어내고, 아시아 축제의 정체성을 토의하고, 축제 정보를 공유하는 장을 만들어 줄 수 있다면 어떨까? 광주에 오면 아시아의 모든 축제의 현황과 비전, 새로운 축제의 모델을 파악할 수 있다면, 광주는 아시아의 축제전문가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할 수 있을 것이며, 이들과 함께 전문가 중심의 ‘아시아 축제박람회’도 개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광주의 축제가 알려지고, 그 시기에 브랜드 축제를 통해 광주의 브랜드 축제와 아시아 축제의 새로운 모델을 아시아와 세계에 알려내는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아시아의 예술인들이 축제 기획자들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광주를 자발적으로 찾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광주를 아시아 예술인들의 메카로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박하지만, 간절한 바람으로 아시아 축제 네트워크를 다시한번 제안해본다.
광주가 한국의 축제 중심도시를 넘어 아시아 축제문화의 허브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 먼저, 보편적 가치와 거대담론을 넘어선 소소한 일상에 대한 관심, 일상적 삶의 가치를 재발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광주가 가진 소프트 파워에 대한 인식과 함께 ‘우리끼리’ 만들면 된다는 지역주의의 극복이 필요하다. 또, 축제와 공연 등 문화예술행사 전반에 대한 관심과 이를 즐길 수 있는 안목을 키우기 위해 다양한 기회를 통해 시민들의 문화적 안목을 키우는 훈련이 필요하다. 또, 광주는 모든 예술장르를 축제의 소재로 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미술’, ‘음악’ 등 광주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특정 예술장르 한두 가지에 집중하는 축제개최 전략이 필요하다. 다양한 축제를 기획하고 마케팅 할 수 있는 축제전문가, 축제 기획자들의 육성 또한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광주는, 전통과 현대, 젊음과 원숙함, 새로운 도전과 실험이 존재하면서 동시에 인류 보편적 가치에 대한 존중이 함께 공존하는 독특한 도시이다. 아직 첫 시도이기는 하지만, 광주에서 ‘브랜드 축제’의 실험이 시작되고 ‘도시 문화브랜드’에 대한 투자를 하고 있으며, 세계에 선보일 ‘브랜드 공연’을 만들고, ‘오월길 프로젝트’를 통해 광주의 골목골목을 역사문화 이야기 길로 만들어가는 노력들을 보면서 즐거운 일상 속에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문화수도 광주’의 희망찬 미래를 예견해본다.